권력은 늘 사찰의 유혹을 느낀다. 사찰을 통한 통제와 감시만큼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 없어서다. 사찰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사상적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으로 되어 있다. 한국 정치사를 살짝 비틀면 '불법 정치 사찰의 역사'가 된다.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 사찰과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며 야당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중앙정보부가 정치 사찰을 담당하는 권력기관으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교수, 심지어 일반 국민까지 모두 사찰의 대상이었다.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자료는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이 기록이 만천하에 드러난 건 1990년 10월 4일.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탈영하면서 챙겨나온 컴퓨터 디스켓 덕분이었다. 그 안에는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자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른바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사건'으로 노태우 정부는 국방부 장관 등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보안사 서빙고분실을 폐쇄했다. 명칭도 국군기무사로 변경했다.
'사직동 팀'도 있었다.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 기능을 담당한 청와대 직속 수사기관으로 정식명칭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였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안가에서 사찰 작업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 1999년 5월 '옷 로비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2000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해체됐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게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폐지됐다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부활했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무차별적인 사찰이 이뤄졌다. 2010년 언론에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면서 공직복무관리관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최근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 감찰반원의 잇따른 폭로와 청와대의 반박이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 시정(市井)에선 이를 두고 사찰이냐 감찰이냐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위는 반드시 가려지게 돼 있다. 서슬퍼렇던 독재정권 때도 진실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날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