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경제정책 실패·개혁 피로감
지지율 하락 원인 몰아가는 세력
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 올리는
정치 모리배들 시대적 요구 무시
지금 깨닫지 않으면 침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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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정부출범 초기에 비해 대통령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그동안 숨어있던 온갖 거부와 불만의 소리가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시민 대다수가 지지했던 공정과 공평에의 요구조차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돌아봐야 할 것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다양한 갈래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심지어 전혀 상반된 입장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외침으로 시민들이 전 정권을 심판한 것은 분명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시민의 요구를 시대정신이란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그 안에는 해방과 정부수립 시 설정했던 대한민국의 지향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었다.

해방 이후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근대를 선점한 이른바 선진국을 추격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복리를 지향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다면, 지금 가시적 경제성장과 일면적일망정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고, 시민적 합의에 따라 그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가 그 안에 담겨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이면서, 또한 그 안에서 일상의 삶을 이끌어가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국가는 실존적 삶을 살아야 하는 개인과 그들이 결코 떠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 부응하면서, 언제나 그 구성원이 일상과 정치적 관계에 답하고, 그 지향점을 실천하는 사회적, 정치적 공동체이다. 국가는 그럴 때만이 의미를 지닌다. 이 요구에 상응하지 못할 때 그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지향점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후기 근대를 넘어 포스트휴먼을 말하는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실존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은 자신이 이룩한 조그마한 정치적 성과와 지지율에 취해 이 시대정신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한 줌의 정치적 이익에 올곧이 빠져있다. 공정성과 올바름, 사람다운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그 모두를 외면하는 정책으로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담대함과 원칙이 필요할 때, 작은 정략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모든 개혁을 허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심지어 꺼뜨렸다고 생각했던 온갖 기득권 세력이 부활하고 있다. 꺼진 불이 살아나 이 나라를 그 이전 부패하고 불의했던, 자칫 파멸로 이끌 수도 있었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온갖 현란한 거짓과 왜곡으로 기득권을 옹호했던 수구 언론이 변했는가? 공정해야 할 법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간주했던 법조계는 어떠한가. 지옥과도 같은 교육 개혁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진작 물러났어야 할 지난 정권의 정치적, 관료적 체제는 오히려 더 힘을 받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시민들의 일상적 삶은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마치 경제 정책의 실패와 개혁 피로감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듯이 몰아가는 세력은 통계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 모든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당파적 이익에 연연해 눈앞의 정권 수호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모리배들은 여기에 현혹되어 거대한 시대정신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아니 오히려 그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다. 지금 돌아서지 않으면 이 정권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이 시대와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시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정신과 필요를 절감한 뒤 담대하고 원론에 기반한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꺼진 불들이 살아나는 악몽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확실하게 침몰할 이 정권의 앞날이 우려스럽다. 지금 구악과 타협하려 했던 정략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실패는 현실이 된다. 거듭되는 실패는 시민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실패이며, 해방 이후의 기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언은 자기회귀적이다.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시대의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 돌아서야만 시민을 돌릴 수 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