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401001685100081441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아기예수')" 시인 황금찬은 오직 사랑만이 예수 탄생의 의미임을 노래했다. 생전에 '시는 신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에겐 당연했던 성탄 찬송이다.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한국은 성탄절을 휴일로 지정한 국가다. 기독교는 전래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민초들과 함께 헤쳐왔다. 굴곡 많은 역사를 관통하는 고난 속에서 기독교는 대중에게 큰 의지가 됐다. 교세가 커지면서 교회세습 등의 적폐도 생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랑의 복음은 치유 능력이 여전하다. 이제 성탄절은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이 한해의 노고를 위로하고 덕담과 선물로 사랑을 나누는 연말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굳이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상업화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사회에나 잠시 쉬어갈 시간과 판타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할 성탄절 즈음해서 한국사회는 한 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니 참 공교롭고 난처하다. 과거정권 적폐청산, 사법농단 의혹, 최저임금 갈등, 유치원 비리 파동, 미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성탄절 풍경이 을씨년하다. 청년실업이 중장년층으로 번지고, 기업이 사라진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문제를 해결할 정치는 아집과 독선으로 중증이다.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버틴다. 그의 말에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연상할 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국민의 심정을 유안진의 시를 빌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황량한 들녘/ 승냥이떼 울부짖는 야밤중 홀로 버려진 새끼짐승('내 가슴을 말구유로')"이라 말하면 과장일까. 2018년 성탄절 즈음 우리 사회는 이해인 수녀의 노래대로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안에 서('성탄 시')"있는 형국이다.

성탄절이다. 황금찬의 기도가 이 땅의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때리길 기원해본다. "나와 또 내 마음속에 다시 와야 할 아기! 예수여.('아기예수')"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