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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9일 한 미국 청년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울먹이며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미국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였다. 관광회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1월 2일 귀국 비행기 탑승 전에 억류된 지 두 달만에 범죄자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이다.

북한 최고재판소는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절도했다는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검사는 무기를 구형했지만 "사회주의 복을 누려가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직접 보도록 하자"는 변호로 감형됐다는 것이 북한 매체의 보도였다. 하지만 웜비어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오래 보지 못했다. 사회주의 복도 웜비어만 비켜갔던 모양이다. 북한은 2017년 6월 12일 혼수상태로 웜비어를 석방했고, 그는 귀국한 지 엿새만에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경악하고 분노했다.

멀쩡한 자식을 잃은 웜비어 부모는 진상규명을 위해 북한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지난 10월 북한을 상대로 11억달러 배상소송을 냈다. 미국 법원은 24일(현지시간) 북한이 5억113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외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웜비어 부모는 북한이 아들을 붙잡아 전체주의 국가의 볼모로 쓰는 잔혹한 경험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배상할리 없다. 미국내 압류할 북한 자산도 없다. 웜비어 사망에 대한 북한 책임을 기록에 남긴 상징적 판결이다. 웜비어 부모도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법적이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세계가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성명을 냈다.

지금 북한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3명 등 6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최장 5년 이상 억류 중이다. 3명의 선교사는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았다. 기독교계가 이들의 구조를 요청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애매했다고 한다. 실제로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안됐다. 답답했는지 한 교회가 정부의 구조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웜비어 사망 직후로, 그의 사망에 격노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목전이던 때였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