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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에 휘둘리는 동안 이순신은 왜란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병선을 수리하고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채워놓았다. 거북선을 건조한 이튿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즉시 제해권을 장악해 일본 병참선을 두동강 냈다.

7년 전쟁 동안 옥포해전부터 명량, 노량해전에 이르는 전승신화로 영해를 장악한 그가 없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달랐을 테고 역사는 더 참혹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그를 시기한 선조의 박해는 졸렬했으나, 성웅(聖雄)의 군인정신은 한결 같았고, 조선은 보전됐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크리스마스 지휘서신이 화제다. 성탄 명절에도 해외 전선을 지키는 장병들에게 "조지 워싱턴 장군이 1776년 델라웨어강을 크리스마스 때 건넌 이후 미군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휴일을 잊었다"며 "야전과 바다에서, 명절과 밤에도 눈을 부릅뜨라"고 명령했다. 국민을 대신해 장병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도 표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처지다. 미국 여론은 매티스 마저 잘라버리는 트럼프의 광증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정치와 상관없이 군인정신을 유지하라'는 매티스의 고별명령에 안도할 것이다.

대한민국 육군이 얼마 전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파괴한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의 철조망으로 액자를 만들어 전방시찰에 나선 여당 의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GP 파괴는 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를 위한 정치적 합의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는 전선 경계전략에 차질이 발생한 비상상황이다. 파괴된 GP와 철거된 철조망을 경계근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여겼어야 했다. 정치가 긴장을 풀더라도 전선의 군인은 군인정신으로 꼿꼿해야 한다.

'사단 전 장병은 한반도 평화수호를 다짐하며, ○사단을 방문하신 ○○○의원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액자 문구도 가관이다. 대한민국 군인의 수호 대상은 영토와 국민이지, 정치의 영역인 한반도 평화가 아니다. 장병들이 왜 국회의원을 기억하는가. 정작 전선의 장병들을 기억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다. 개념 없는 철조망 액자에는 군인정신이 없었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