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강사법등 정책 악재로
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
명목 매달려 무책임한 시행 아닌지
의지 있다면 철저한 구조 만들어야
기실 일개 책상물림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일련의 어설픈 정책들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최저임금 정책을 보자.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4가구 당 1가구로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의 4배, 일본의 2.5배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취약 계층이거나, 취약 계층을 겨우 면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합리적인 정책일까. 동의하기가 어렵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엉뚱한 곳에 불필요한 대립 전선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로 인해 혀를 차는 것이다. '자영업자 vs 아르바이트생(직원)'의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건물주가 쓸어가는 임대료를 제한하고, 그렇게 절감된 비용의 일부가 아르바이트생(직원)의 임금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명목에만 매달려 무책임하게 정책을 실행해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강사법 시행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사의 신분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십여 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당연하다는 듯 개설과목의 기준 요건을 강화하고, 대폭적인 시간강사(과목) 숫자 줄이기에 나선다. 강사법이 강사를 잡아먹는 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
아마 여력이 뒷받침되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된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시행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점차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면모를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문공동체라거나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의식보다는 수익 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 대학들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고부응 중앙대 교수의 '대학의 기업화'(한울, 2018)를 참조하는 게 좋겠다. 뻔히 예상되었던 이러한 사태에 맞닥뜨려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용운 건국대 교수의 '국정가치로서 사회적 가치의 한계와 과제'를 읽다 보니 어째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단서가 포착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 뒤인 2014년 6월, 국회의원 문재인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대표발의하였다. 그는 제안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비전·전략 체계도'를 보면, 이때 제출하였던 문제의식이 "사회적 가치 실현"이란 용어로 집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깃발은 실상 구두선(口頭禪)에 그치는 모양새다. 공공기관 평가기준을 보건대, 시장경쟁 및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가치' 관련 지표들이 큰 비중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사회적 가치' 관련 지표들의 배점이 다소 상향된 수준에서 그와 병존하고 있다. 대립하는 두 개의 가치가 사이좋게 나란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지표의 배점 상향 조정도 그리 획기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평가받는 기관에서는 비중이 큰 평가 항목에 집중하며, 이와 배치되는 항목은 구색 맞추기 수준에서 유야무야 얼버무리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질서를 기꺼이 용인하면서 최저임금, 강사법 등을 내놓아 보아야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만약 의지가 있다면 좀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 창출과 연동하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그 길을 따르며 상승하게 될 것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