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집단 완벽한 역사 쓰려 조바심 칠일 아냐
정부·집권여당, 겸손해지려고 노력 한다면
새해에는 사회의 많은 갈등 해소될 수 있어
1월 1일은 2018년 12월 31일의 연장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기해년을 맞아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가 그 증거다. 청와대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말했다. 국민 눈에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의 시비로 보였을 것이다. 장담하지만 말이 안통하는 외국어 정치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지만 밑천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2019년 경제의 밑천은 2018년의 경제다. 밑천만 보면 올해 경제전망은 불온(不溫)하다. 세계 경기의 하강국면이 예사롭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어디에 미칠지 안 가본 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크다. 작년의 자동차, 철강산업 쇠퇴가 올해 반도체로 이어지면 대한민국 주력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다. 황금돼지의 기운에 편승한 낙관은 막연하다.
정치는 막장이고 경제는 어려우니 새해는 글렀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그저 어떻게든 살아날 구석을 만들어 버틴 거지." 지난 연말에 만난 한 기업인의 얘기다. 1990년대에 제조업을 시작해 IMF환란, 세계금융대란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사업가다. 그의 말대로 국민은 위기가 닥치면 모든 생존 수단을 동원해 살 길을 뚫어왔다. 이것이 현대사다. 대한민국은 위기와 극복의 무한궤도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적립해왔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이 적립한 일상의 누적이자 역대 정권이 분담했던 역사적 역할의 총합이다.
면면히 흐르는 역사의 강(江)에서 문재인 정권도 지류이자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역사의 본류를 자임하고 전체임을 자처하면서 감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의 원인은 정권의 자부심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지고지순한 DNA를 강조한다. 초월적인 도덕성과 순수성에 기반한 정권의 국정운영에 오류는 없다는 태도는 너무 완강해 강박에 가깝다.
무오류 정권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소득주도성장, 원전 폐지 등이 그랬다. 북한 비핵화를 명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요청도, 원전산업 붕괴 우려도 사소한 시비나 불순한 의도일 뿐이다.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단정했다. 여당 의원에게 조국은 '유전자 가위'고 김태우는 '불량 유전자'다. 대통령은 강력한 '경제실패 프레임'으로 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빛을 잃는다고 답답해 한다. 야당의 비판은 적폐의 대변이고, 언론의 지적은 순결한 정권을 향한 저격일 뿐이다.
정권이 스스로 완벽을 자처할수록 작은 상처에 휘청인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 그러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상대적 우월감을 절대적 선으로 착각하면 실수를 교정하고 방향을 전환하기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않아도 좋지만 원망받지는 말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만 해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야당의 사찰의혹에 대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대통령을 떠난 민심이 만들어낼 호랑이는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
역사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은 정권을 바꿔가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현대사의 본류를 이루어 왔다. 남북관계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권을 바꾸어 가며 긴호흡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특정 정권이 완벽한 역사를 만들겠다고 조바심 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그래야 2019년 한해가 역사에 의미있게 보태질 것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