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쳤기 때문
변화 속에서 균형잡힌 삶 살려면
'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 중요
정직·엄격하게 내 자신 마주해야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희망, 용기, 용서의 기운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른 해와 달랐던 점은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우리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도 받았지만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느낌이 없어요.", "해가 바뀌었다는 것도 별로 실감이 안나요."라고 말한다.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더 좋아지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은데 마음이 더 공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특히 과학기술은 우리가 예측하기도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이렇게 빨리,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과도하게 물질에만 치우쳐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잃어가고 균형이 깨지면서 인간은 자꾸자꾸 공허(空虛)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리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오늘날의 인류는 지난 과거의 세대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대부분의 기술이 2050년에는 쓸모가 없어질 수 있다' 고도 말한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키워야 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과 새로운 변화에 정신적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힘만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말이 다 맞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조선 정조 때의 유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500여권의 저작물을 냈지만 그의 마지막 공부는 송나라 진덕수의 심경(心經)을 바탕으로 한 마음공부였다. 마음공부는 '나'라는 존재의 중심을 지키는 것에 그 종착점이 있다고 본다. 유발리 노아 하라리도 정약용도 '나는 누구인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인 나(我)란 존재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정직하고 엄격하게 내 자신을 마주하며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 앞에 가만히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펼쳐보는 그림책이 있다. '첫 번째 질문/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김소연 옮김/천개의바람'을 찬찬히 보면서 소리 내어 낭송하다 보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된다.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어떤 건가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아름다워!" 라면 참 좋겠다.
/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