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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는 '굿모닝 하우스'는 옛 경기도지사 공관이었다. 지금은 주변에 차도 다니고 사람의 왕래가 잦지만 공관이 지어진 60년대 만해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팔달산 북쪽 끄트머리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동네 꼬마들도 가기를 꺼렸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 경사면을 따라 신이 나게 눈썰매를 타다가도 해가 지려고 하면 얼른 장비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왠지 기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조때 이곳은 전염병 환자와 시신을 안치하던 터였다. 수원 토박이 어른들은 이곳을 '환자를 수용하는 곳'이라고 해서 '병막(病幕)'이라 불렀다. 이곳을 공관으로 사용한 도지사들은 터의 영향을 받는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인제를 비롯해 손학규 김문수 등 전 경기도지사는 정치적으로 큰 꿈을 펼치지 못했다. '공관의 저주'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풍수가 조광은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공관 자리가 "산자락을 깎아 인위적으로 터를 다졌기 때문에 여기서 사는 사람이 생기(生氣)를 받기 어렵다"며 "향을 억지로 맞췄지만, 이는 산자락을 왼쪽으로 끼고 있는 형상이어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원칙에도 위배 되고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 터 풍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4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문재인 대통령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는 대통령의 공약 보류를 발표하면서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술 더 떠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만 답했다. '청와대 터(경복궁 터)가 문제'라는 얘기는 조선 때부터 나왔다. 세종 15년 (1433년) 풍수가 최양선이 처음 '경복궁 터 음지론'을 제기했다. 세종의 지시로 영의정 황희와 신하들, 풍수가가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 확인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왕이 직접 북악산에 올라가 '길지'라고 판명했을 정도다.

그 후로도 풍수 논쟁은 지속됐다. 서울대 최창조 교수는 "청와대 터는 사람이 살기 힘든 신들의 거처"라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자리"라고까지 했다. 그렇다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청와대 이전'은 일개 대통령 자문위원이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공약 1호로 내걸었다가 파기한 대통령의 사과가 먼저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