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2년 세종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 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 등 6승지를 두어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게 했다. 모든 왕명은 승지에 의해 해당 관서에 보내졌고 공문이나 건의사항도 이들을 거쳐 왕에게 전달됐다. 6명의 승지를 둔 것은 경국대전이 규정한 6전 체제에 상응하는 비서조직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각자 맡은 일도 달랐다. 승지들의 공식적인 직위는 정3품 당상관이었지만 이들의 힘은 더 컸다. 정승의 힘을 뛰어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승지였던 한명회, 김자점, 홍국영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게 가능했던 건 왕을 가까이서 보필하고 언로(言路)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정부'로 불리는 것은 비서실 권력이 막강해진 탓이다. 장관보다 청와대 비서관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34세의 1년 차 청와대 행정관이 주말에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 군 인사를 논의한 게 가능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후마니타스 刊)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자신들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지휘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관념은 '청와대가 권력이 되는 정부'를 낳는다"고 적었다. 지금 청와대가 꼭 그런 모습이다.
부시 정권 때 국방부 장관을 지내 '매파'로 알려진 도널드 럼즈펠드는 포드 대통령 때는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그는 공직 생활 중 터득한 행동요령을 모아 '럼즈펠드 원칙'을 만들었다. 첫 문장은 "대통령에게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자리를 수락하거나 머물지 말아야 한다"로 시작된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백악관이 원하고 있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도 적었다.
청와대가 어제 비서실 인사를 단행했다. 비서실장엔 '원조 친문' 노영민 주중 대사가 임명됐다. 집권 3년 차 분위기 쇄신 인사라고는 하지만, 시중엔 '땜질식 회전문 인사' '여론 무마용'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인사 실패 책임과 직권남용 논란에도 조국 민정 수석이 유임됐기 때문일 것이다. 신임 노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친분이 아무리 두텁다 해도 지시에 무조건 동의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잘못 판단하면 주저 없이 "아니오"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살리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