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부동자금 1117조… 10년간 40% 증가
외환위기 후 안전자산 선호지수 더 높아져
선순환 담보 안된 정책 '언 발에 오줌누기'

올해 경제성적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경제는 사람들의 심리를 먹고 크는 법인데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천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19년 경제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70%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확인되었다. 극히 일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확신은 금물이나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정부는 금년 상반기 중에 일자리 및 사회간접자본 예산 61%를 쏟아부어 경기를 진작시키기로 했다. 2003년 카드 사태를 계기로 도입한 조기집행 중 가장 규모가 크나 재정의 경기진작 효과가 갈수록 떨어져 성과는 의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넘쳐나는 국내의 부동자금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DA) 등 단기부동자금이 무려 1천117조원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2009년의 800조원에서 10년 만에 무려 40%나 불어난 것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8월 대비 3개월 만에 부동자금이 28조원이나 증가했다. 넘쳐나는 국내 부동자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정답이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유발한 통설적 견해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대미무역 흑자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압박해서 해당국가의 통화가치를 10% 이상 끌어올리도록 한 플라자협정을 든다. 이후 엔화 환율이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하자 해외자금들이 일본에 대량 유입되어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버블경제가 초래되었지만 일본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장기경제부진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 브린튼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일본연구소 소장과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 토시오(山岸俊男) 교수는 공저한 '위험에 등을 돌린 일본'(2010)에서 일본인들의 지나친 위험회피 성향이 '잃어버린 20년'의 근본원인이라 지적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조사대상 일본인의 73%가 자신이 위험기피자라 응답했다. 버블붕괴는 일본인들의 위험회피지수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은행이자율이 0%에 가깝지만 주식으로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돈이 은행으로만 몰린다. 배당과 주식자본 이익에 대한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음에도 가구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다.
국내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현상들이 간취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적이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낭패했음은 물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들마저 줄줄이 폐업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니 종신고용시스템의 붕괴와 고령화는 한국인들의 안전자산 선호지수를 더욱 높였다. 부동자금 탓에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는 등 국민경제는 더 불안해졌다.
임상심리학자 주디스 바드윅의 미국 장기경제부진에 대한 진단도 눈여겨볼만하다. 194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연간 GDP성장률은 3.5%였지만 2002년 이후 이 숫자는 1.9%로 떨어졌다. 오바마정부와 진보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저성장의 시대를 '뉴 노멀'이라 명명하고 그 원인을 인구구조 변화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바드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장기호황으로 미국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에 안주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자금 선순환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활성화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법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