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안시성주 양만춘에게 대패해 군사를 물리면서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원정을 말렸을 것"이라며 뒤늦게 후회했다. 태종의 명재상 위징은 살아생전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위징의 직언이 얼마나 심했던지 태종의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한다. 그 위징이 죽자 태종은 자신의 허물을 막아주었던 구리 거울, 역사 거울, 사람 거울 중 '사람 거울'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정사의 득실을 가려주었던 위징의 간언을 귀중하게 여긴 당 태종 역시 비범한 군주였다.
백제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경고한 성충의 충언이 지겨워 귀를 닫은 건 물론 그를 옥에 가두어 굶겨 죽였다. 성충은 죽어가면서도 한 말씀 아뢰겠다며 백제 방어전략을 상소했다. 그의 충언을 물리친 의자왕은 나라를 잃고 전쟁포로로 당에 끌려갔다.
직언을 무시해 신세를 망친 최근의 지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자신을 자문하던 새누리당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인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으로 부터 '최태민의 그림자를 지우고 정윤회를 멀리하라'는 충언을 듣는다. "이런 말씀 하시려고 저를 지지하셨나요?" 박근혜의 반응을 싸늘했다. 토사구팽 당한 김용환의 예언은 적중했다.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는 비선실세 파문을 일으켰고,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비선실세로 드러났다. 최태민의 그림자가 박근혜를 몰락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충심의 제안'이 화제다. 충언의 핵심은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재개 결단이다. 논리는 명쾌하다. 산허리를 깎아 조성하는 태양광 발전은 대체에너지로 한계가 있으니, 석탄화력 발전의 공해를 줄이려면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때마침 전국을 강타한 미세먼지 공포로 인해 송 의원의 '충언'이 더욱 빛났다.
그런데 당내는 물론 대통령의 반응이 차갑다. 3선인 우원식 의원은 4선인 송 의원에게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었다"고 비난했다. 충언에 담긴 메시지는 외면한 채 '시대 난독'이라니, 이런 모욕이 없다.
송 의원의 충언은 민주당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이 아직은 건강하다는 지표다. 이를 무시하고 모욕한다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위험해진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