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뒤 큰 그림 그렸던 '2095 발전기획단'
지방분권·특례시 완성 살기좋은 도시 조성
그의 시야 밑거름으로 한반도 평화 기여해야
첫째는 수원상인 이야기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한 수원. 가게에서 외상 거래를 많이 하던 사람이 외상값을 떼어먹고 도망을 갔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이 외상값을 떼어먹었다는 것을 잊고, 물건을 사려고 하자 속옷 차림으로 방에서 쉬고 있던 주인은 목소리만 듣고 돈을 떼어먹은 사람임을 알아보고 속옷 차림으로 뛰쳐나갔다. 주인의 얼굴을 보고서야 '아차', 줄행랑을 쳤고 30리에 달하는 추격전 끝에 붙잡혀 외상값을 갚았다는 얘기 끝에 생겼다는 설.
둘째, 옛날 수원 도성에서 30리쯤 떨어진 떡전거리에 효성이 지극한 선비가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겨 기방 출입을 하던 어느 날, 기방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생각하니 그날이 선친의 제삿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못할 불효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급한 마음에 의관도 갖추지 못하고 뛰기 시작해 가까스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도착해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수원사람을 비하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설화는 잘못된 상거래를 바로잡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부친을 위해 최선을 다한 효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수원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오죽하면 아주 특별한 토론회를 준비했을까. '수원사람 발가벗고 30리 뛴다, 정설 확립 토론회'였다. 매년 1월이면 유독 보고픈 사람. 미스터토일렛 전 수원시장 심재덕 이야기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벌써 10년, 그의 기일에 맞춰 SK아트리움에서 10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꽉 채운 객석을 보며, 그는 지금도 수원의 심장으로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실문화운동에서, 생명의 수원천으로, 빛나는 세계문화유산 화성과 함께. 수원 도시 곳곳에 그의 손길과 숨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없다. 오늘의 수원을 있게 한 사람, 남보다 앞서 수원사랑을 생각하고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다.
콘크리트가 뒤덮고 있던 수원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을 시작했고, 서호를 시민 품으로 돌려주었다. 팔달산 터널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화성행궁 복원의 역사를 열었다.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이뤄냈고, 모두가 만류한 2002년 월드컵 수원경기 유치를 성사시킨 것도 심재덕이었다.
심재덕은 수원시장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2095수원발전기획단'에 열을 올렸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100년 뒤 수원은 그저 작은 평범한 도시로 전락될 수 있다. 수원의 맥을 찾아 역사문화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며 100년 뒤 수원의 큰 그림을 그렸다. 오는 3월 개장하는 광교컨벤션센터를 비롯해 체계적이고 균형 있는 수원 발전의 시작점은 '2095수원발전기획단'이었다.
온몸이 뒤틀리는 암 투병 속에서도 수원이 전 세계 화장실 문화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세계화장실협회의 창립을 이뤄내며 희망의 마중물을 만들었다.
올해는 기미독립만세운동 100돌, 수원시승격 70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특히, 수원은 특례시를 이뤄내 더 큰 수원으로의 도약의 갈림길에 있다. 시민이 진정한 도시의 주인이 되는 실질적인 풀뿌리 민주주의와 분권을 이루고, 특례시를 완성해 수원을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또 그의 정신과 시야를 밑거름으로 새로운 남북평화 협력시대에 수원이 선도적인 남북교류와 협력의 장을 만들며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
심재덕이 꿈꾸고자 했던 것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나누고, 미래세대로 이어줘야 한다. "위대한 시민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라는 당신의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염태영 수원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