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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조금 잘 팔린다 싶으면 유통사는 저희를 떠나고, 저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죠."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한 화장품 제조회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몇 년 전 서울의 중소 유통사와 힘을 모아 새로운 브랜드 제품을 개발·출시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어떤 제품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함께했던 유통사는 더 많은 물량을 더욱 싼 값에 생산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갈아탔다. 유통사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결국 처음부터 브랜드와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새로 출시한 화장품이 잘 팔리기 시작할 때가 차기 제품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인천을 떠나지 않을 화장품 브랜드를 키우고, 소비자를 끌어들일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인천에는 400여 개 화장품 업체에서 1만명 가까운 종사자가 나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연 2조7천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것이다.

인천시는 이런 점을 반영해 뷰티(화장품) 산업을 인천의 '8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육성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인천시는 인프라 조성과 성장 기반 구축, 융복합 개발을 통해 뷰티 특화도시를 이루고, '세계인이 찾아오는 뷰티 메카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인천시가 올해 화장품 산업 육성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13억원이다. 지원을 본격화한 2014년부터 올해까지 따져보면 연평균 9억원 수준이다. 경우에 따라 큰돈일 수 있지만, 10조원을 넘는 인천시의 예산 규모를 고려하면 민망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유통사와 제품 개발·생산→납품, 브랜드 성공→유통사 대기업 행(行)→새 제품 개발·생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더욱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비전은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것 아니었나.

/이현준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upl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