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시 발전 더딘 산업 비중 늘고
디지털 기술 '일부 영역'만 영향 미쳐
4차 혁명 '급격한 변화 초래'는 과장
신기술 통한 '지속경제성장'은 가능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생물학적, 물리적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심대한 정치, 경제, 사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기술진보 속도가 아주 빨라져서 인류가 유례없는 변화를 맞게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디지털 기술이 여러 곳에서 쓰이고 세상이 확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슈밥이 나서기 전에 누리엘 루비니를 비롯한 여러 학자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 변화를 3차 산업혁명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제러미 리프킨 역시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들은 기술 발전에 대해 낙관적인데 아예 비관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중요한 발명은 이미 다 이루어졌으며 지난 약 250년에 걸친 인류의 경제적 성취는 예외적인 사건이고 향후 기술 발전이나 경제성장 전망이 매우 어둡다고 말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통계자료만 보면 설득력이 있다. 역사상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있었는데 경제성장률을 보면 전기와 내연기관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높았고 3차 산업혁명(디지털 혁명) 시기에 가장 낮다. 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갈수록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다.
그 이유가 뭘까. 역설적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기술 발전이 더딘 산업(주로 노동집약적 서비스업) 비중이 커진다. 기술이 발전한 산업에선 임금이 오르고 제품 가격이 하락한다. 가격 하락 때문에 매출 증가가 생산량 증가 또는 성능 향상을 못 따라간다. 이때 기술 발전이 없는 산업의 임금도 동반 상승한다. 컴퓨터산업과 외식산업으로 구성된 경제가 있다고 하자. 컴퓨터 회사로 구직자가 몰리면 식당 일손이 달리기 때문에 식당 임금도 오른다. 컴퓨터산업에서 늘어난 소득은 외식에 대한 수요를 늘린다. 외식산업은 생산성이 안 올라도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한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 발전이 더딘 산업 비중이 커지는 쪽으로 경제구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선진국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일어나도 경제 전체의 성장률은 낮아진다. 3차 산업혁명 시기 경제성장률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거의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인 발명이 이루어진 2차 산업혁명과 달리, 디지털 기술은 일부 영역에만 영향을 미친 점도 3차 산업혁명의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경제구조 변화와 실증 자료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역시 디지털 기술이 근간인 점을 고려하면 신기술 때문에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급진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슈밥의 주장은 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 대신 지식, 즉 기술과 아이디어가 중요해지는 것이 지식기반경제다. 노동과 자본을 지속해서 늘리기는 어렵다. 늘려도 추가적인 효과는 점점 둔화한다. 따라서 노동과 자본을 이용해 '생산하는 방식' 즉 기술의 발전만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과장된 부분을 덜어내면 그것이 바로 지식기반경제의 진전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기술 발전이 더딘 산업의 재화나 서비스도 더 비싼 돈을 치르지만 더 많은 양을 소비할 수 있다. 그것이 경제발전이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