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어른들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라"였다. '손만 씻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어른들의 지론이었다. '병이 옮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물과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는 병원의 기본 지침을 처음 제정하고 이를 전파한 사람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었다. 영국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부모 몰래 간호자원봉사대원으로 참가해 '백의의 천사'란 소리를 들었다.
당시 영국군은 전쟁에서는 5천여명이 사망했지만, 병상에서 세 배가 넘는 1만5천여명이 사망했다. 열악한 환경의 야전병원에서의 감염병이 주범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자 '환자 주변에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있다'는 의혹이 확산하기까지 했다. 병원 내 감염병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날개의 천재작가 이상에게 날개를 빼앗아 간 건 결핵이었다. 철학자 데카르트와 칸트, 스피노자, 예술가 쇼팽과 도스토옙스키도 모두 결핵으로 숨졌다. 치료법을 몰라 환자를 염소우리에서 재우거나, 나귀 젖을 먹이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치료법이 결핵을 더 확산시킨 셈이다. 1943년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면서 인간은 결핵으로부터 비로소 자유스러워졌다. 이게 불과 75년 전이다.
19세기 말 영국 왕립진료소에서 환자의 절반이 패혈증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수술실 주변에 뿌리고 손과 의료기구를 닦는 데 사용하면서 인류는 마침내 '소독'에 눈을 떴다. 간단한 수술에도 70~50% 가까운 사망률을 보이던 당시, 리스터의 소독법만으로 사망률은 25% 이하로 낮아졌다. 20세기 들어서 무균실 개념이 생겼고, 60년대 이후 각국의 병원감염관리기준 제정으로 병원에서 감염되는 비율이 3% 수준으로 떨어졌다.
설 연휴 기간 경기도와 인천에서 감염병인 홍역 환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안산에서 홍역에 걸린 A씨는 기존 감염자가 입원한 병원의 환자로 파악됐다. 병원에서 감염된 것이다. 올 들어서만 경인지역 내 홍역환자가 20명을 넘었다. 미국 질병 예방통제센터(CDC)는 손 씻기를 '셀프백신'이라고 하여 가장 쉽고 효과적인 감염병 예방법으로 권장하고 있다. 일반인은 손을 잘 씻고, 병원은 소독에 전력을 기울이며 무엇보다 병원 내 문병·간병 문화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