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권력 만들고 뒤 안돌아 봐
토사구팽 예견하고 떠난 '범려'
정치에서 손 떼고 큰 부자 일궈내
최소이윤으로 건전한 상행위 구현
이 어려운 세상에 필요한 이치


경제전망대 조승헌2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시대, 라고 하면 현실을 모른다고 욕을 먹겠지요, 범형.

신기합니다. 이십 년 넘게 엎치락뒤치락 전쟁을 치르고 내부 권력 싸움 끝에 결국 승자가 되는 순간, 다 내려놓고 도망치듯 흔적 없이 잠적하셨지요. 보스가 적국 오왕 부차의 인분을 먹고 쓸개를 맛보는 독기가 있었던 것도 범형 같은 참모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전쟁이 끝나면 전우가 정적이 될 것이라는 건 그 당시에도 상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견물생심. 눈앞에 떡이 있는데 그대가 손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점에 이르면 위험해진다는 스승 귀곡자(鬼谷子)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덕이겠지요. 보스가 고난은 함께하지만 영화는 나눌만한 품성이 아닐 것이라는 그대의 판단도 정확했지요. 그대가 보스가 주는 떡을 받아먹었다면 동료 문종처럼 토사구팽의 주인공이 되었겠고 저와의 인연도 없었겠지요.

정치에서 손을 떼고 범형은 큰 부자를 뜻하는 도주지부(陶朱之富)라는 말을 만들어냈죠. 춘추시대이니 고조선 말기쯤인데, 범형은 품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기초한 가격 책정, 물건과 자금의 원활한 순환이라는 비즈니스의 원칙이 있었죠. 정치권의 러브콜을 피하려고 치이자피, 도주로 이름을 바꾸고 몸을 숨길 때마다 큰 재산을 세상에 나누어 주곤 했죠(정치권을 떠날 때도 '거마비' 정도만 챙겼지만). 저는 명동, 연남동, 해외의 차이나타운에서 화상(華商)들을 볼 때마다 범형을 떠올립니다. 일할 이하의 이윤만을 남긴다는 원칙을 지키고 건전한 상행위를 하더라도 사업에 성공하고 사람을 챙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구현했기에, 그대는 장사의 신이라는 칭송을 받는 터이겠죠.

천하의 권력을 만들어내고 세상의 돈을 긁어모았지만, 범형의 마음 한구석은 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대의 연인 서시(西施) 말입니다. 경국지색 그 말대로 패전국의 공물로 바쳐진 서시에게 빠진 오왕 부차는 싸움에 지고 자결을 하죠. 서시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더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미가 사업가의 사모님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에 상당히 어긋날 듯합니다. 그런데도 서시의 최후에 대한 설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은 둘 사이의 해피엔딩 버전입니다. 살아 돌아온 연인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백년해로, 후손도 줄줄이. 그대를 아끼는 세상 사람들이 그대의 개인사가 안쓰러워 둘을 맺어주고자 하는 애절한 마음이 쌓여 야사가 정사로 바뀔 정도네요. 아름다운 가짜 뉴스.

정치인으로 범형은 할 만큼 했지요. 자신의 지략을 마음껏 실행했고, 자신을 믿는 보스를 만났고, 적국에서 보스와 함께 유폐 생활을 이겨냈고, 무엇보다 자신의 여자를 이용한 미인계에 성공하여 승전의 일등 공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떠나셨습니까? 정치는 결국 둘 중의 하나라고 하던가요. 자기와 가족의 절대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는 정치가 그 하나겠지요. 백성을 위해서 온마음 온몸을 바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건강도 재산도 가족도 버릴 각오를 해야겠죠. 또 하나의 정치. 이전과 정반대로 나, 가족, 조직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백성을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죠. 현실 정치는 이 둘 사이겠지만 나쁜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좌표를 두고 백성들과 생각하는 차이가 크겠지요. 백성들은 지도자가 한 만큼 따라줍니다. 보스의 사모님이 백성들과 함께 한 필의 베를 짜니 두 필, 세 필을 해내고자 몸을 아끼지 않던, 아! 그들. 민초의 염원이 뭉쳐 부모, 형제, 자식, 연인의 한을 풀게 되니 칼과 피를 꽃의 지천(至賤)으로 만들 수 있지 않았습니까.

범형, 형수와 알콩달콩 잠깐 멈추시고 아래 세상 한 번 들르시죠. "지혜의 별이자 지략의 혼이요, 상인 중의 성인이자 사랑의 신"(세스쥔 소설, 상성). 그 이름값 기대해 봅니다. 지금 여기,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치가 좋아질 가능성은 더 아니라고 합디다. 청춘들이 결혼도 자식도 부담스러워합니다. 이 어려운 세상, 어찌할까요? 다 버리고 다 얻은 그대, 이천 오백 년 긴 잠 갈무리하고 이제 여기에 깨어나시지요, 범려.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