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작고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18세 때 미 해군 최연소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때 몰던 뇌격기에 약혼녀인 '바버라'의 이름을 붙였다. 바버라의 가호 때문인가. 격추당한 그는 바다에서 표류하다 무사히 구조됐고, 바버라는 대통령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영광을 누렸다.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 폭격기의 애칭 '에놀라게이(Enola Gay)'는 기장인 폴 티베츠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2차대전 당시 미 공군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전투기와 폭격기 동체에 다양한 그림과 문자를 그려 넣었다. 이빨을 드러낸 상어 입 모양이나 맹수들은 물론 당시 유명 여배우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출격횟수나 격추한 적기를 표시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긴 조종사도 적지 않았다. 사기 진작과 긴장 완화,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일종의 부적이었던 셈이다. 노즈 아트(Nose Art)라는 예술장르로 발전한 건 훗날의 일이다.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투혼을 상징하는 '신념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도 딘 헤스 미 공군 소령이 몰던 F-51D 머스탱 18번기에 새겨진 노즈 아트였다. 그의 좌우명인 'By faith, I fly'를 번역한 문구였다. 헤스 대령은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 창설 지원 임무를 맡았지만, 미숙한 한국 조종사들과 함께 250회나 전투 출격을 감행했다. 미 공군이 대한민국 전투기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2016년 대한민국 공군은 그의 1주기 추모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이 곧 운행할 닥터헬기에 지난 4일 격무로 사망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이름과 그의 콜 사인 '아틀라스(Atlas)'가 새겨진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의 약속이다. 열악한 응급의료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윤 센터장을 잃은 이 센터장의 추도사는 애절하고 비장했다. 그는 윤 센터장을 '한국의 응급의료를 떠받쳐 온' 아틀라스라고 칭했다. '창공에서 만나자'며 닥터헬기에 항상 고인의 자리를 마련해 두겠다고 다짐했다.
닥터헬기 '아틀라스'는 전국 최초로 24시간 운영된다고 한다. 그만큼 안전비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윤 센터장의 가호로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리라 믿는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