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찍으면서도 흥행은 생각도 안 했다. 제작자 이태원 사장도 이런 영화가 무슨 흥행이 되겠느냐며 저예산으로 찍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그런데 뜻밖에 대 히트를 쳤다. 덕분에 보너스도 받았다." 100만 관객 동원의 역사를 쓴 임권택 감독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100만 관객이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한 영화관에서의 단독 상영이 관행이었다. 개봉관에서 먼저 상영을 하고 난 뒤 2번, 3번 관으로 넘어갔다. '서편제'는 서울 단성사에서만 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작비는 고작 3억 원이었다.
1993년 10월 29일이 100만 관객을 돌파한 날이라면, 2004년 2월 19일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한국 영화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넘어선 기념비적인 날이다. '서편제'가 1993년 4월부터 196일간 상영돼 100만 명을 동원한 데 비해 '실미도'는 상영 58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처럼 단시간 내 관객 동원의 비결은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 플렉스 영화관 덕이 컸다. 만일 임권택 감독 시절에도 이런 영화관이 있었다면 '서편제'는 몇 명을 동원했을까.
멀티 플렉스 영화관은 우리 영화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97년 연간 영화 관객이 5천만 명도 채 안 됐지만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후 2002년 1억 명, 2013년 2억 명을 돌파했다. 실미도 이후 1천만 관객 이상 한국 영화는 2014년 1천761만 명으로 단일 영화로는 최고 기록을 가진 '명량'을 비롯해 모두 15편이다. '신과 함께-죄와 벌'(1천441만) '국제시장'(1천426만)과 '베테랑'(1천341만) '7번 방의 선물'(1천281만) 등이 이에 속한다.
영화 '극한직업'이 개봉한 지 19일 만인 11일 현재, 관객 1천300만 명을 넘었다. 역대 박스 오피스 6위다.'7번 방의 선물'을 누르고 역대 코미디 영화 흥행 기록도 갈아치웠다. 순 제작비 65억 원 매출액 1천130억 원. 말 그대로 '초대박'이다. '위기의 한국영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영화계가 침체기에 빠진 상황에서 등장한 1천300만 관객 영화라 그 의미도 남 다르다. 그동안 우리 영화계는 정치영화에 함몰돼 대작조차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모처럼 살아난 한국 영화의 열기가 꺼지지 않게 우리 영화계가 소재의 다변화에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