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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운전할 능력을 상실했음에도 운전대를 잡는 노인들을 가리켜 '살인자 할아버지(killing grandpa)'라고 부른다. 살인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애덤 한프트 같은 미래학자들은 2000년 초부터 고령운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증후군'으로 명명했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주인공인 71세의 데이지가 차 사고를 낸대서 착안한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겪은 일본은 초보운전자에겐 새싹 마크를, 고령 운전자는 네 잎 클로버 마크를 뒷유리에 붙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고의적으로 추월하거나 위협을 주는 행동을 하면 벌금과 벌점을 준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갱신하고자 하는 경우 사전에 강습예비검사를 의무화했다. 인지기능 테스트에서 치매, 간질 등의 질환이 확인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운전하다 차량에 붙어 있는 스티커 중 흔히 보이는 게 '초보운전' '아기가 타고 있어요'다. 때로 '나도 내가 무서워요' 같은 애교 섞인 문구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운전에 미숙한 초보 운전자로 돌발사태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알아서 대비하라는 당부다. 하지만 실제 도로에서 초보운전자보다 더 무서운 건 고령 운전자들이다. 그러나 "나 고령 운전자요"라고 스스로 밝히는 스티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달 98세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직접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해외 토픽을 접하며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96세의 노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행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고령의 운전자는 지난해 시력과 청력 등 기초적인 신체검사로 구성된 적성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인터넷 상에서는 고령자 운전의 위험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앞으로 고령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를 남의 일로 생각할 때는 지났다. 노인단체 등에서는 고령자의 운전 제한에 반발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심도 있은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