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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정치를 떠나고자 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깨끗이 물러나겠습니다." 15대에 이어 16대 대선에서 패한 새누리당 이회창 전 총재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주변은 숙연했다. 이때 누군가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거 때 좀 울지. 그러면 당선됐을지도 모르는데…."

정치인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종종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상대방은 마음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상황 반전을 시키는 데 있어 눈물만한 것도 없다. 하긴 정치뿐일까. 우리의 인생사가 모두 그렇다. 그래서 눈물을 '입이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한다.

눈물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정치인으로는 단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힌다. 그는 '아무리 감명 깊은 연설이라 해도 한 방울의 눈물만 못하다'는 것을 실제 증명했다. 2002년 대선 때 존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을 담은 광고가 TV 전파를 타자 국민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노무현의 눈물에서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이는 극적인 반전을 가져왔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

잘 못 흘린 정치인의 눈물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수락연설에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미개하다"고 언급해 사태가 악화하자 이를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이완구 국무총리도 아들의 병역 공개검증을 앞두고 "비정한 아버지가 됐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악어의 눈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의 눈물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정치인은 스스로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눈물을 흘렸다. 그제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와 관련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질문을 자청해 심경을 토로하면서다. "아무리 정치이고, 잔인한 판이라고 해도 죽은 형님과 살아 있는 동생을 한 우리에 집어넣고 이전투구를 시킨 다음에 구경하고 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지사의 표정은 처연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현장의 소리도 들린다. 이 지사에게 이 눈물이 반전의 계기가 돼 도정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