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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맨 처음 떠오른 영화가 있다. 베트남 전쟁이 배경인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다. 전쟁의 참혹함을 잘 보여주는 반전영화의 수작이다. 특히 영화제목처럼 사슴사냥을 즐기던 평범한 젊은이들이 참전 후 포로로 잡혀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포탄이 떨어지고 총격전이 오가는 여느 전쟁신 보다 신랄하게 전쟁의 잔인한 실상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개봉한지 4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어쩌다 영화를 다시 볼 때면 테이블 위에서 권총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컷에서부터 음울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적시는 기타 소리 또한 명장면 못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바로 영국의 작곡가 '스탠리 마이어스'가 만든 '카바티나'(Cavatina)로 호주의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연주했다.

악보만 보면 4분의 3박자 단순한 아르페지오 반주에 멜로디만 얹은듯해 쉬워 보이는데 제대로 연주하기가 꽤 까다로운 곡이다. 기타 강사인 한 지인은 카바티나에 도전했다가 슬럼프에 빠져 수개월 동안 소리를 내지 않고 운지와 탄현 연습만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대가들의 흠 없는 연주를 듣다 보면 이 곡이 왜 클래식기타 3대 명곡 중 하나로 불리는지 이해가 간다.

보는 내내 긴장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 이 영화는 어쩌면 카바티나가 흘러나오는 엔딩크레딧을 위해 달려왔는지 모른다. 영화와 별도로 곡 자체만을 볼 때 카바티나는 전쟁영화 OST로는 미스매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애잔하고 담담하게 흐른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의 행복했던 시절을 보여주면서 자막이 올라가는 영화 막바지에 이 곡의 진가가 나타난다. 등장인물들의 해맑은 표정과 '슬픈 기타 소리'라는 이 기막힌 조합은 '왜 평화가 필요한지'를 저절로 느끼게 해준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반전영화라는 평가마저 희석시키는 명분이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 44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 하노이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그동안 핵단추 운운하며 지구촌 관객들에게 긴장과 인내를 요구했던 두 정상이 베트남에서 반전영화 보다 더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