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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증후군' 가능성 큰 '어른애'
공동체 사회 모두에게 불행 안겨줘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몰라 슬퍼
극심한 경쟁 부작용이 낳은 캥거루족
세계는 풀기힘든 올가미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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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얼마 전 'SKY 캐슬'이라는 TV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입시 만능 교육제도를 비판하며 시청자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그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나온 소위 입시전문 '코디'가 드라마 이후 학부모에게 엄청난 관심을 일으켜 학원가에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자괴감을 금할 수 없지만 이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니, 우리 교육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뿐이다. 하여튼 그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이 있으니, 의사 강준상(정준호 분)이 극 중 어머니(정애리 분)에게 이렇게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니가 의사 되라고 해서 의대 갔고, 병원장 해보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끼인 줄 모르고 혜나를 죽였잖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지 새끼인 줄도 모르고 죽인 주제에 어떻게 의사 노릇을 하냐고요. 날 이렇게 만든 건 어머니라고요. 지 새끼도 모르고……. 낼모레 쉰이 되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모르는 놈을 만들었잖아요, 어머니가!" 조금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능력 있고 성공한 한 의사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으며 절규하는 장면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강준상처럼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친 듯 소리를 지르며 갑질을 하는 부잣집 엄마와 딸, 늙은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다 홧김에 살해하는 패륜아 등의 기사를 거의 매일 본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 일상에도 이런 사람은 흔하다. 창문을 열고 담배꽁초를 무심히 버리는 운전자, 전철 안에서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을 종종 본다. 태블릿피시가 조작됐다고 아직도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도 있고, 이 말을 SNS에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어쩌다 이런 '어른애'가 됐을까.

어른이 되지 못한, 혹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를 소위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나는 혹시 아닐까 궁금하시다면, 여기 '자가 체크리스트'가 있으니 확인해보기 바란다. (1)하고 싶은 일만 한다. (2)자신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린다. (3)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4)상대방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다. (5)부모님께 철없이 대한다. (6)생각이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7)겉모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8)감정적으로 불안정하다. (9)끈기와 성실성을 찾기 힘들다. (10)단점을 남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위 항목에서 다섯 개 이상 해당한다면 당신도 피터팬 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주변의 제삼자에게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 한다면 정확도와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어른애'의 특징은 위 체크리스트에 그대로 다 나와 있다. 대체로 현실 도피적이고,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며,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에서 이들은 그 자신에게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모두 불행을 안겨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어른'이 된다는 건 참으로 슬프고 위험한 일이다. 이들은 주체가 없으므로 모든 판단의 근거를 밖에서 빌려온다. 사리판단을 할 능력이 없으니 얇은 귀로 남의 흉내만 낸다. 매사 의존적이어서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쁘게 나오기라도 하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우긴다.

소위 '어른애'가 요즘 우리나라에만 유행하는 현상은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는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마음대로 살려는 사람을 '프리터(freeter)', 중국에서는 빈둥거리며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을 '컨라오주( 老族)', 유럽에서는 부모 곁을 떠났다 생활이 힘들다고 부모의 품으로 기어들어오는 자식을 '부메랑키드(boomerang kids)'라 부른다고 한다. 이런 캥거루족은 모두 근래 신자유주의가 극심한 경쟁과 빈부격차라는 부작용을 낳으며 생긴 기현상들이다. 세계는 지금 참으로 풀기 어려운 올가미에 걸려 있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