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모습. /연합뉴스DB
영변 이외에 북한이 숨겨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북미 2차 정상회담 파행의 원인에 '영변 이외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공장이 북한에 존재한다는 논란은 지난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빌미가 된 문제여서, 이번 회담으로 같은 위기가 17년 만에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외신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북미정상회담 직후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 과정에서 같은 논란이 빚어졌음을 시인했다.
회견에서 외신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영변 플러스 알파를 원했나'라는 질문을 던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나오지 않은 것(북한 핵시설)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들도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이 '추가로 발견된 시설이 우라늄농축과 같은 것이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이 영변 핵시설 외에 또 다른 우라늄 농축 시설의 폐기를 요구했는데, 북한측이 이를 부인하거나 거부했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미국이 얘기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이란 천연 우라늄(U-237 0.7%)에 포함된 핵물질인 U-235의 조성비를 원심분리기 등을 이용해 높여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을 만드는 공장이다.
이 같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이를 진행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은 북미간의 심각한 분쟁 요인이 되어왔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2년 10월이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원심분리기 제작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통관 자료 등을 제시하며 의혹을 제기했고,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고 '폭탄 발언'을 하면서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은 이듬해인 2003년 1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UEP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이 문제는 결국 2차 북핵 위기로 비화하면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백지화 됐다.
이후 북한은 2010년 11월에 미국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 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주면서 2천대의 원심분리기를 설치·가동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우라늄 농축시설은 차지하는 공간이 작아서 어렵지 않게 은폐할 수 있어서, 북한은 영변 이외 지역에도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작년 7월 북한이 영변 이외에 '강성(송)'(Kangsong) 발전소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0년부터 운영된 이 발전소의 이름을 '강선'(Kangson)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도 북미정상회담이 파행된 직후인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에는 영변 외에도 최소 2개 이상의 핵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현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밝혀, 미국이 영변 외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를 제기하면서 회담이 꼬였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실무협상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영변 외 핵시설 폐기 문제가 정상회담 자리에서 불거지면서 회담이 결렬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앞으로 영변 외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경우 또 다른 북핵 위기가 촉발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미국은 2005∼2007년 북핵 6자회담 때 협상의 끊김을 막고자 북한이 부인하는 우라늄 문제를 사실상 옆으로 치워둔채 플루토늄만 다뤘다가 결국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 시설을 능가하는 수준의 우라늄 생산시설을 확보하도록 방치한 뼈아픈 기억이 있어 영변 외 우라늄 농축시설 문제를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