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정해진 시간 쫓겨
역사적 경험 반복·불쾌한 사실 전개
한반도 평화는 '생존과 삶'의 문제
'노딜'이었지만 비핵화 피할 수 없어
그러나 해결법을 두고는 의견이 다르다. 정설은 알다시피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것. 하지만 매듭을 고정하고 있던 못을 뽑아 끈의 실마리를 찾아 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언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은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회담을 보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과 복잡한 매듭의 일부라도 풀어내려는 쪽의 대결. 지금까지는 드러난 대로 미국은 일괄타결을, 북한은 단계적 해결방안을 선택하였다.
이처럼 엇갈린 방안을 서로 선택한 것은 두 정상이 처해있는 위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탄핵위기와 내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정치적 난제와 목표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강력한 제재로 주민들의 삶에 다가오는 악영향과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쪽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정해진 시간 때문에 쫓긴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미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회담의 결과는 '노딜'이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비핵화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에도 역사적 경험이 반복되고, 불쾌한 사실들이 전개되었다. 일본은 북미 간 회담의 성공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해주기를 원했다. 비핵화와 북한의 유엔제재 해결보다는 아베정부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진정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니가타 항에서 만경봉호 등을 타고, 북한으로 간 9만3천340여명의 동포들의 안부를 함께 묻는 것이 예의다. 식민지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남북한의 분단을 초래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국가이자 지도자라면 남북통일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세력과 정치인들 대부분은 남북한의 분단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일방주의는 그러하다 치고, 미국의 각 기관이나 정파들도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에 대한 국내 일부 세력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의 평화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의 시각에서 통일과 평화 문제를 재정립해야만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준 제2차 북미회담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각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모을 때다. 문 대통령이 겹겹이 얽힌 매듭의 크기와 길이 등을 잘 파악하여 북미는 물론 관련 당사국에 전해야 한다. 단칼에 끝낼지. 못을 뽑아야 할지. 하나씩 풀어야 할지. 그 방안과 해법까지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다시 부여받았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들의 생존과 삶의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노력에 국민들의 성원이 필요한 이유다. 오랜 고통 속에서도 큰 기대를 했던 이산가족과 개성공단 그리고 금강산 관련 기업 등에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전할 때다. 회담결렬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배 신한용 개성공단협의회 회장에게 전하고 싶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생각하세. 다 잘 될 거야(All is well)".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