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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2015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재벌 수사를 방해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거칠게 내뱉은 대사다. 한 언론사의 2018년 설문조사 결과 경찰은 최고의 영화와 명대사로 베테랑과 서도철의 대사를 꼽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은 대개 무능하고 비리에 찌든 모습으로 소비된다. 공권력을 향한 사회적 불신이 반영된 결과지만, 진짜 경찰들에겐 불편한 일이다. 베테랑의 서도철은 주눅 든 경찰들의 '가오(자존심)'를 세워준 것이다.

작명(作名) 탓인가, 클럽 '버닝썬(Burning Sun)'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중들은 현실판 '베테랑'으로 버닝썬 사건의 전개에 집중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재벌2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마약, 성범죄 등 온갖 퇴폐적 일탈 행위를 벌인 베테랑의 '강남 클럽'은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의 미장센에 불과했다. 하지만 버닝썬 사건으로 미장센은 현실이 됐다. '물게(외모가 출중한 여성손님)', '골뱅이(만취한 여성)', '물뽕(마약)' 등 클럽 버닝썬의 은어들은 화려한 조명의 그늘에 숨어있던 마약, 성범죄의 진한 흔적들이다.

버닝썬의 불길은 경찰로 번졌다. 버닝썬의 무법적 운영의 배경에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있다는 의심은 이제 사실로 굳어가고 있다. 112 신고내역을 들여다 보니 버닝썬은 작년 2월 개장 이후 마약·성추행·납치감금·폭행 등 112건의 사건이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신고됐다. 하지만 버닝썬은 아무일 없는 듯 영업했다. 역삼지구대는 오히려 사건의 발단이 된 버닝썬 폭행 피해 청년에게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경찰은 4일 마약 투약 및 유통 혐의로 버닝썬 대표 등 10여명을 입건하고, 경찰 유착의혹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불똥이 검경 수사권조정과 자치경찰제로 튀었다. 이런 경찰에게 수사권과 지방치안을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명분을 얻고 있다.

영화 '베테랑'은 서도철의 수사를 방해했던 동료 경찰이 어떻게 됐는지 생략했다. 하지만 실화 '버닝썬'에선 비리 의혹 동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초미의 관심사다. 경찰이 칼날 같은 수사로 '가오'를 세울 수 있을지, '버닝썬'의 결말에 전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