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처지 국민들 '형평성 문제'
지역별 대상·재정여건 차이도 커
서비스 전달 지방정부에 맡기고
중앙은 예산 늘리고 간섭 안해야
![경제전망대-허동훈10](https://wimg.kyeongin.com/news/legacy/file/201903/2019030601000378400016831.jpg)
첫 번째 이유는 지자체 주민들 간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같은 복지 서비스를 받는 것이 규범적으로 옳다. 부자 동네에 산다고 복지 혜택을 더 받고 가난한 동네에 산다고 복지 혜택을 덜 받아서는 안 된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복지 정책을 결정하면 지자체 간 재정 여건에 차이가 없어도 복지 제도가 다를 수 있는데,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조건을 갖춘 주민이 특정 복지 혜택을 받거나 못 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복지 정책을 정부가 수립해서 지역별 차이 없이 균등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주민이 주거지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동부 지역은 가난한 사람이 많다. 복지 지원을 강화했더니 세인트루이스 서부 지역 빈곤층이 동쪽으로 많이 이주했다. 당연히 동서 간 빈부격차가 커졌고, 복지 대상자가 늘어난 동부 지역 재정은 더 어려워졌다.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로 지자체 간 재정여건의 차이도 정부가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부자 지자체는 복지 대상자가 적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이 많이 사는 지자체는 복지 대상자가 많다. 특정 지역에 잠재적인 복지 대상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지역의 세수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지자체가 자기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지자체가 예산을 부담하도록 맡기면 복지 예산과 복지 대상자의 부조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주민 간 그리고 지자체 간 형평성을 위해 전국적으로 균일한 복지제도를 운영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도 책임져야 한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하는 현금 복지는 지자체가 재원을 책임지지만 일반적인 복지 서비스는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복지 예산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정부나 지자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자체가 더 어렵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때는 지자체도 부담하게 한다. 그런데 지자체의 사회복지 재정 증가율이 정부보다 높다. 정부 정책으로 지자체 살림이 더 빠듯해지는 것이다. 정부가 100% 책임을 질 수는 없겠지만, 지자체 간 재정여건 차이와 상대적으로 높은 지자체 복지 예산 증가율을 고려하면 정부가 부담하는 몫을 크게 늘려야 한다.
정부가 정책과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복지와 관련된 지자체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복지 대상자를 선별하고 복지 서비스를 전달하는 일은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렵다. 각 지역에 있는 지자체는 해당 지역 주민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고 접근성도 좋다. 세종시에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이 직접 대면 조사를 하고 복지서비스를 전달할 수 없다. 전국 각지 주민이 세종시 청사를 찾아가서 문의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복지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려면 전국 지자체별로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복지 서비스의 전달체계는 지자체가 맡는 것이 옳다. 전달체계는 복지 서비스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정책 수립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지방자치를 내세워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 정책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번지수가 틀린 지적이다. 정부가 할 일, 지자체가 할 일을 가려서 지자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지방자치다.
/허동훈 에프앤자산평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