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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을 얻으려고 갖은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을 '엽관(獵官)'이라고 한다. 사냥 렵(獵)에 벼슬 관(官). 거칠게 직역하면 '관직을 사냥하는 것'으로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엽관에 제도가 붙어 '엽관 제도'가 되면 '권력자나 정당이 관직을 독점하는 정치적 관행'이 된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마시 상원의원의 '전리품은 승리자에게 속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제도화 시켰다. 우리가 귀아프게 듣고 보았던 '회전문 인사'나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이 제도의 산물이다.

주중대사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정되자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흠집을 내고 물러났다. 불과 얼마 전 고대 졸업식장에서 "나는 무지개를 쫓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4강 대사 중 하나인 주중대사에 임명되면서 청와대 인재풀에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회전문 인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퇴임 한 달 만에 UAE 외교 특별보좌관에,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실패로 물러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소득 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왔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 담당 행정관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에 다시 임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꼽힌다. 신 교수는 생전에 '70%의 자리론'을 강조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신 교수는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된다고 우려했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면서도 높은 자리를 가고 싶어하는 세태를 꾸짖은 것이다.

오늘중 개각이 있을 예정이다. 역량이 출중해 그 자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면 회전문이 아니라 회전목마 인사라 해도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몇몇 인사의 면면을 보면 업무에 탁월한 식견을 갖췄거나 뛰어난 공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검증된 인사를 주요 대사와 부처 장관으로 채우겠다는 문 대통령 의중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낯부끄러운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신 교수의 '70% 자리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