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01000735500035311

선동열의 손은 손목에서 중지까지의 길이가 18㎝다. 손가락만 따지면 중지가 7.7㎝로 한국 성인 남자의 평균치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 에이스 정민철의 23㎝에 비하면 무려 5㎝나 짧다. 최전성기 시절에도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 것은 짧은 손가락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KBO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이런 위력 투구로 선수시절 내내 검지와 중지 사이를 째서 손가락 길이를 늘렸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야구에서 '1'의 의미는 매우 크다. 선동열의 손가락 길이가 실제 1㎝만 길었다면 한국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야구장 외야 펜스까지의 거리가 1m 길거나 짧다면 홈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야구공이 1㎜ 크거나, 작다면 야구 경기의 흐름도 바뀔까. 아마 그럴 것 같다. 2018년 프로야구는 뚜렷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보였다. 정규리그 702경기에서 터진 홈런은 1천756개로 프로야구 사상 최다였다. 40홈런 타자도 5명이 나왔다. 이유가 있었다. 공의 반발계수(공이 튀는 정도)가 원인이었다. 반발계수가 0.01 높아지면 평균 비거리는 2m 정도 늘어난다. 공 때문에 지난 시즌 게임마다 예기치 않은 홈런이 쏟아져 나와 재미보다는, 수준 이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야구의 묘미라는 '팽팽한 투수전'도 사라졌다.

여론에 못 이긴 KBO가 올 시즌부터 공인구 둘레를 1㎜ 크게, 무게도 1g 정도 늘렸다. 특히 실밥 폭도 1㎜ 커졌다. 이 때문에 반발계수가 0.4034∼0.4234로 0.01 낮아졌다.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들에겐 희소식이다. 실밥이 커 '채는 맛'이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공을 끼어 던지는 포크볼 투수는 불리해졌다. 공이 커져 '꽉 죄는 맛'이 없어져서다. 직구 위주의 투수도 불리하다.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이 고작 1㎜ 1g 바뀐 공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미세한 변화에도 투수들은 그만큼 민감하다. 야구는 그런 경기다.

내일부터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예전보다 시즌이 1주일 이상 앞당겨졌다. 겨우내 야구를 기다린 열성 팬은 "반갑다! 야구야"를 외치지만, 초미세먼지라는 복병도 만났다. 투수는 1㎜ 커지고 1g 무거워진 공과, 타자는 0.01 낮아진 반발계수와 그리고 관중은 초미세먼지와 신경전을 벌여야 할 2019시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