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동2

전쟁때 피란 나와 시작된 굴까기
크고 작은 상처속 58년째 이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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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잘린 손이 훈장입니다.

 

일흔여덟 김군자 할머니는 58년째 인천 동구의 굴막을 지켜왔습니다.

굴막은 굴을 까는 임시 작업장입니다. 

 

우리는 그저 아연이 풍부한 겨울 음식으로만 알고 굴 먹기에 바쁘지만, 할머니에게는 평생의 목숨줄이었습니다. 


평안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온 가족이 피란을 나왔습니다.

인천의얼굴 만석동 굴작업장

충남 안면도에 자리를 잡았다가 인천으로 옮겼습니다. 

 

뭐 특별한 기술이라고는 없는 할머니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영종도며 팔미도 등지로 나가 갯벌을 뒤졌습니다.

여름에는 바지락, 겨울에는 굴을 캤습니다. 실향민 대다수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겨울철 차디찬 바닷바람을 막아야 했습니다.

북성포구, 만석부두 여기저기에 굴막이 생겨났습니다. 장갑을 낀다고는 하지만 손 마디는 굵어지고, 크고 작은 상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바다에 나가 주꾸미를 잡기도 했습니다. 오른쪽 검지 한 마디를 그때 잃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굴 까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5남매를 키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구청에서 작업장을 따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굴 까기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굴막은 인천의 역사입니다.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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