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시립박물관 전시 의견도
친일잔재 일관된 관리정책 필요
"감추고 싶은 내용도 드러내야"

인천부사를 지낸 '을사오적' 박제순의 공덕비를 인천시민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다시 세워 역사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친일파가 인천부사였다는 사실을 부끄러운 역사로만 치부해 삭제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남달우 인하대 사학과 초빙교수는 12일 "공덕비를 원래 있던 자리(인천향교 앞)에 다시 세우고 대신 이런 사실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며 "인천에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는 사람이 훗날 친일파가 됐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좋은 역사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또 "2005년 박제순 공덕비 철거 당시에도 무작정 없애버릴 게 아니라 그대로 놔두고 발전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자고 주장했었는데 충분한 논의 없이 철거됐다"며 "일제 잔재, 친일파라고 해서 모두 없애기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된다"고 했다.

박제순의 공덕비를 다시 세우되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와 전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물관 전시자료로 활용해 후대에 을사오적 중 한 명이 인천부사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도시역사관장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박제순 공덕비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반대한다"며 "다만 여러 명의 부사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박제순 1명을 부각할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해 교육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천시가 친일 잔재에 대한 역사관을 정립하고, 일관된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는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천시가 역사 문화유산 관리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며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박제순의 공덕비도 반면교사로 삼아 '이런 사람이 더는 나와서는 안 돼'라고 시민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만 드러낼 것이 아니라 꺼리고 감추고 싶은 내용도 드러내 상처를 치유할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 관료 박제순은 1888년 5월부터 1890년 9월까지 2년 4개월 동안 인천부사를 지냈고, 1905년 11월 17일 우리나라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늑약에 서명한 5명의 대신(을사오적) 중 한 명이다.

인천에는 그의 부사 시절 공적을 기리는 공덕비가 1891년 8월 세워졌는데, 2005년 친일파 숭배 논란이 일자 인천시가 철거한 뒤 14년 동안 방치해 왔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