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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부터 결혼 60주년이 되면 회혼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평균수명이 50세가 채 안 됐기 때문에 회혼례의 가치는 그만큼 컸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회혼례를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 때문이다. 황혼 이혼은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황혼 이혼이 급증한 이유는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남은 삶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여성이 많이 늘어나서다. 국민의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었고, 고령층의 체력이 과거보다 향상되고 건강해지면서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진 점도 한몫 했다. 남자가 퇴직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이후, 오랜 세월 쌓인 불만이 폭발한 여성이 이혼 서류를 내미는 경우가 더 많다.

졸혼(卒婚)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결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졸업했다'는 졸혼은 "유명 연예인 OOO도 했다더라"라는 말까지 돌면서 황혼기 부부들이 들썩였다.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살면서 자유롭게 각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며 무용담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늘어났다. 졸혼은 당장 이혼을 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눈곱만치의 애정도 없이 사실은 그동안 자식들 때문에 살았다'는 '커밍아웃' 부부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황혼이혼' 건수가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해 전체 이혼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 이혼의 급증은 황혼 결혼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60세가 넘어 황혼 결혼한 남성은 6천126명, 여성은 3천604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통계를 처음 집계한 1990년과 비교하면 남성은 3.9배, 여성은 9.1배나 늘어난 수치다. 75세 이상 결혼도 남성은 같은 기간 128명에서 660명으로 5.1배, 여성은 9명서 264명으로 29.3배나 많아졌다.

결혼생활은 여섯 가지 이유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는 사랑, 나머지 다섯은 신뢰라는 것이다. 1975년 9월호부터 월간지 샘터에 소설 '가족'을 34년 동안 연재했던 고 최인호는 눈감을 때까지 "가족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공동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황혼 이혼과 황혼 결혼이 동시에 증가하는 작금의 세태를 최인호가 봤다면 뭐라 할지 최근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