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한날 한시에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이젠 관행이 됐다. 특정일에 주주총회가 몰리는 날을 뜻하는 '슈퍼주총데이(super 株總day)'라는 용어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지난 2016년 3월 25일엔 무려 818개 기업이 주주총회를 열어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세웠다. '슈퍼주총데이'로 주주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비난이 비등하자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날 한시에 주총이 몰려 있다. 12월 결산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천67개사 중 오늘 328개사가, 29일에는 537개사가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렇게 주총을 여는 것은 소액주주의 참여를 막기 위해서다. 한 날에 열리니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개미투자가들도 기업 한 곳만 정해서 참석할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만 해도 주총은 축제일 같았다. 기업마다 주총을 찾은 소액 투자가들에게 우산, 필기구 등 비록 작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박용진 민주당의원은 기업들의 이런 속 보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슈퍼 주총 데이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분산해서 주총을 하면 주주들의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취지에서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 20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소액주주 수천 명이 몰리며 입장이 지연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주총장에 들어서려는 대기 줄이 인근 도로까지 이어지는 등 진풍경도 연출했다.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액주주 친화 정책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 주주총회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미 올해 SK하이닉스, 포스코,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재계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세계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전자투표제 도입에 따른 부담감도 없지 않다. 대면 없이 온라인상에서 하는 회사 현안에 대한 질의와 토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총은 주식회사의 주주들이 모여 회사의 중요한 사안을 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만큼 최대한 많은 주주의 참석이 보장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들어선 지금, '슈퍼 주총데이'라는 용어마저 구시대의 잔재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