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자녀들 KT 특혜채용 의혹 일파만파
신임교수·민간기업 선발도 부친 직업 강요
기회균등·공정경쟁 흔들려 '상대적 박탈감'
'개천의 용' 사라진 한국사회 선진화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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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중견 영화배우 김광규가 좋다. 비록 대머리이나 준수한 외모에다 맛깔스런 조연 역할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천명에도 혼밥족 신세를 못(?) 면하는 서민적 풍모에도 연민이 느껴진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부지 뭐 하시노?"는 압권이다. 2001년에 개봉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담임 선생님이 제자인 동수와 준석의 뺨을 비틀며 걱정하는 장면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뇌리에 명대사로 각인되어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딸의 특혜채용 의혹으로 불거진 KT 채용비리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와 정갑윤 의원의 아들들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터에 KT노조가 친박 핵심실세였던 홍문종 의원도 채용비리에 연루되어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 위원장이던 홍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과 측근 등 4명에 대해 부정 취업청탁을 했단다.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나 '강원랜드 채용비리'의 판박이란 느낌이다.

공기업의 채용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취업빙하기에 견줄 만큼 갈수록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판에 고임금에다 종신고용이 보장되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인 탓이다. 공기업 내에 만연한 보신(保身) 문화는 점입가경이다. 주인 없는 조직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풍지 확보가 필수적인 때문이다. 이번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사례가 상징적이다. 부정청탁이 의심되는 직원 한명의 입사서류 성명 칸 옆에 괄호가 쳐지고 그 속에 부모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모 지방대학의 신임교수 채용서류는 더 노골적이다. 인터넷으로만 접수 받는 취업지원서에 지원자의 부친 이름과 직업을 적는 난이 있는데 부친의 관련사항을 제대로 기입하지 않으면 입력되지 않아 서류접수가 불가능하다. 30대 이상의 최고 지성인들한테도 부모 직업을 묻는다니 아연실색이다. 그 대학 교직원 중에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유력인사 자녀 및 친인척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도 기업들처럼 정치가, 고위공직자, 재력가, 언론인 등 가진 자들과의 커넥션 형성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짬짜미 채용 엄단을 외쳤지만 별무효과이다.

공기관이 이럴진대 민간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수년 전에 모 대기업 임원 출신의 한 인사로부터 필자가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지원자의 업무능력이나 자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친의 직업이란다.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으로 검찰이나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 근무자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데다 아버지의 직책이 높을수록 합격 가능성도 크다고 귀띔하며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앞으로 연고채용은 더욱 만연할 개연성이 높다. 요즘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입사원 채용이 두렵단다. 사람 잘못 뽑았다 낭패보기 십상이란 것이다. 세계화 확대는 또 다른 변수이다. 사업장의 글로벌화는 불문가지여서 임직원들의 충성도 제고가 훨씬 강조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정부는 피면접자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블라인드전형을 주문하나 한계가 있다.

작금의 채용비리에 대한 모 취업준비생의 반응이다. "누구는 취업하려고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노력해도 역부족인데 누구는 부모의 힘으로 쉽게 입사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계란으로 바위 깨는 격이니." 더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이 흔들리는 점이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존 롤스 교수는 "공정성의 핵심은 '운(運)의 중립화'이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등 우연하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자연적 조건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연고(緣故) 자본주의야말로 한국사회 선진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천에서 용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고 역설했지만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