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골란고원 이스라엘 주권인정' 포고문 서명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이스라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이은 트럼프의 이런 배려에 5선 도전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가 크게 감동했던 모양이다. 선포식이 끝나자 네타냐후는 "골란고원에서 최상품의 와인을 한 상자 가져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대신 백악관 직원에게 주고 싶다"며 호기를 부렸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골란고원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한 건 '포도나무 심기'였다. 1천m 이상 고도, 화산토와 선선한 기후는 포도 재배의 최적지였다. 그때 심은 묘목이 적당하게 자라나자 1983년 '골란고원 와이너리'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곳 와인은 '야르덴' '감라' '골란'이란 상표를 붙여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와인은 최근 국제시장에서 호주 와인과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직 프랑스나 칠레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포도주 제조기법에 최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와인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 2015년 11월 EU(유럽연합)는 이스라엘 와인에 대해 생산지 라벨 부착을 의무화했다. 무력으로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므로 이 지역 생산 와인을 EU에서 판매할 경우 '메이드인 이스라엘' 대신 해당 정착촌을 산지 라벨로 부착하라는 것이다.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베를린의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이스라엘 와인을 철수시키자 네타냐후까지 나서서 항의하는 등 외교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지금 튀니지에서는 제30차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아랍 정상들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주권을 강조하면서 미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이스라엘 우호 정책을 비난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자국민을 살상 가스로 살해하며 친이란 정책까지 펴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의 비도덕성과 중동국가의 분열로 더는 의견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골란고원이 실제 이스라엘로 편입돼 골란고원 고급 와인이 '편입 축하주'가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