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실향민들 부두 판잣집
캐온 굴 직접 까서 파는 '작업장'
환경변화·노후화 기능상실 방치
동구 "철거후에 호안 정비 계획"
한국전쟁 이후 피란 온 실향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만석부두 굴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동구가 오가는 사람이 없이 방치돼있는 굴막을 철거하고 해안가 호안을 정비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인데, 60여년간 이어 온 굴막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오전 11시께 동구 만석부두 인근 공유수면. 해안가를 따라 사람 2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판잣집 3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판잣집 대부분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거나 문이 뜯어져 있었다. 내부는 낡은 이불, 녹슨 난로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한 판잣집 벽면에 걸려 있는 달력은 2012년 3월에 멈춰있었다. 판잣집 한 곳만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있을 뿐 나머지는 폐가였다.
만석부두 공유수면에 있는 판잣집들은 '굴막'이다. 굴막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온 사람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부두 인근에 터를 잡아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 연고도 없는 인천에 정착한 실향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바다가 있는 인천에서 실향민들은 만석부두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 팔미도 등지로 나가 캐온 굴을 직접 까서 연안부두 상인들이나 굴막을 찾은 사람들에게 팔았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굴을 까던 사람들은 겨울철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판잣집을 만들어 임시 작업장으로 사용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만석부두 굴막은 활기가 넘쳤다. 해안가에서 직접 깐 자연산 굴을 파는 만석부두 굴막은 인기가 많았다. 제철인 9월부터 12월에는 굴을 사기 위해 오는 상인들과 손님들로 붐볐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대형마트 등에서 굴을 쉽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시설이 낡은 굴막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굴막에 나와 작업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둘 떠나갔다.
굴막을 지키던 1~2명도 2년 전부터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실향민들의 삶의 터전이 60여년 만에 제 기능을 잃게 됐다. 지금은 당시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낡은 어구, 저울, 작업복 만이 만석부두 굴막을 지키고 있다.
만석부두에서 50여년 간 가게를 운영하며 굴막을 지켜봐 온 송모(78)씨는 "굴막이 잘될 때에는 판잣집마다 2명씩 들어가서 분주하게 작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굴을 까던 사람들이 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은 굴막이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구는 연안어촌계 요청에 따라 제 기능을 잃은 채 방치돼있는 굴막을 모두 철거하고 공유수면 쪽 호안을 정비할 계획이다.
호안을 정비해 공유수면이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물양장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시설을 철거하기 위해 연안어촌계에 굴막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을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철거를 진행한 후 공유수면을 관리하는 인천해수청에 호안 정비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