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리나라 영화 팬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은 60대 중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해서였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등장하는 '판초'차림의 건 맨 조(Joe). 눈을 지그시 감은 무표정한 모습,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쏘는 속사포에 추풍에 낙엽 지듯 쓰러지는 악당들. 유령의 울음처럼 울려 퍼지는 음산한 휘파람 소리와 엔리오 모리꼬네의 황량한 주제음악. 이런 것들은 속도 느린 서부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에겐 전율에 가까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약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에서 냉혈 형사 캘러핸 역을 맡아 미국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10인'중 한 명으로 뽑혔다. 반전운동이 전성기를 맞던 시대에 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더티 해리'시리즈를 4편이나 더 찍은 그는 자타가 공인한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전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라스트 미션 (원제·the mule(마약 운반책 ))'을 보았다. 1930년생으로 이제 그의 나이도 90이다. 연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구부정한 그의 어깨 위엔 수없이 떨어진 연륜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스크린 위엔 조각 같은 얼굴 캘러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늙은 마약 운반책 얼 스톤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2011년 전 세계 최고령 마약 운반책으로 붙잡힌 '레오 사프'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절묘하게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으로 온통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에 개봉됐다. 흔히 '농익었다'는 말이 무색한 노배우의 연기보다 마약 이야기라서 더 관심을 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제 우편, 특송화물로 들어오는 마약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마약 구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운반 방법은 고전적 수법이 돼버린 셈이다. 운반책과 판매책이 누군지도 모른 채 암호 화폐로 거래되면서 단속도 훨씬 어려워졌다. 급기야 유엔 기준에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부여되던 마약 청정국 지위도 지난해 기준 24명으로 늘어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마약은 한번 손대면 영혼이 파괴될 때까지 끊기가 어렵다. 이제 본격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할 때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