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얼굴 김포평야 농부6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귤현동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농사일'
200 → 40가마니로 줄었지만 애틋한 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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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천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의 부평과 계양 일대는 드넓은 평야 지대였습니다. 지금은 공단지대, 아파트단지에 내몰려 인천의 논밭은 그야말로 손바닥만 하게 쪼그라들었습니다.

일흔여덟 최영민 할아버지는 계양구 귤현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봄이 되면 매일 새벽 논에 나가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을까지 그랬습니다.

땀을 흘린 만큼 결과는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많을 때는 80㎏들이 200가마니를 거두었습니다. 농사짓던 곳에 인천지하철 귤현역이 들어서면서 땅을 내놓았습니다. 아예 땅을 떠날 수 없어 보상금으로 강화에 밭을 샀습니다.

남의 땅을 빌려 논 농사도 짓는데 소출은 40가마니로 크게 줄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동네 행정구역만 해도 부천군, 김포군, 북구, 계양구로 바뀌어 왔습니다.

귤현역사를 볼 때마다 3대째 이어온 집안의 농토를 팔았다는 생각에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땅은 애틋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요.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농사를 지어온 이 땅은 정말 오래전부터 농토였습니다.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가 계양부사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계양구, 서구, 부평구, 김포를 하나로 묶은 행정구역의 수령이었습니다. 이규보는 그때 빗속에서도 일하는 농민들을 보고 노래했습니다.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건 백성에게 달렸고, 만인의 생사는 벼 싹에 매였다고요.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건 언제나 진리이지요.

최영민 할아버지는 우리의 먹거리 생산 최일선에서 지금껏 버텨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는 18일, 품에 안은 저 볍씨를 파종할 생각입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가을에 맞이할 풍년을 그려봅니다.

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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