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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으며 춤·음악 즐기던 쿠바인들
이중화폐제도로 계급사회 불화 조짐
시인 '호세 마르띠' 행복을 말하길
"이성에 대한 단련·우주조화 깨달음
꾸준한 관대함 실천으로 얻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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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며칠 전 쿠바 여행을 끝내고 지금은 멕시코로 옮겨와 이 글을 쓰고 있다. 근래 몇몇 TV 드라마와 프로그램에서 쿠바를 다루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위 '핫'한 여행지로 쿠바가 뜨는 것 같다. 실제로 트리니다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예상보다 많은 한국인을 만날 수 있어 깜짝 놀랐다. 쿠바에 대해 우리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쿠바를 한 달 둘러보고 난 결론은 가난한 건 맞지만 아름답다고 하긴 좀 어렵겠다는 것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역사 문화도 볼거리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쿠바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조심 판단한다면, 자연이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 아닐까. 골목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늘 웃음을 띠고 있으며,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인사가 길고 길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도 거부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이방인인 내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때론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어온다. 저녁이 되면 민박집 골목이 사람들 떠드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 찬다. 그들의 춤과 음악 '살사(salsa)'가 꼭 이렇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이토록 행복할 수 있을까?

쿠바인의 한 달 평균 월급은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 의사이든 공무원이든 식당종업원이든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물가가 싸긴 하지만,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나? 달걀이나 식용유가 나오는 날이면 종일 북새통을 치며 긴 줄을 서서 배급받듯 사와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지겹지는 않을까? 교육과 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지만, 수십 년 된 고물차를 고치고 또 고쳐서, 이젠 원형을 알아보기도 힘든, 굴러가는 게 신통한, 쿠바 시가보다 독한 매연을 뿜어대는 차를 타는 게 짜증 나지는 않을까?

2009년 영국의 한 경제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에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9개 국가가 상위 10위권에 들어 있다. 경제 여건은 선진국이 앞서겠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의 행복감은 그것과 별로 관계가 없는 듯하다.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날로그적 유대관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뺨을 부비고, 춤을 추면서 파트너와 스텝을 맞추고, 사생활 비밀이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동네방네 떠들며 산다는 것. 그런 생활에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 쿠바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한가?" 물으면 대부분 망설임 없이 "시(Si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며 나는 그 행복에 지금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면을 감지했다. 미국의 경제봉쇄가 풀리면서 조금씩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중화폐 제도, 내국인용 화폐(모네다)와 외국인용 화폐(꾹)가 다르다. 같은 액수에 가치가 24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예컨대 길거리에서 파는 피자는 5모네다(약 200원)인데, 내가 민박집(Casa)에 저녁을 주문해 먹는다면 10꾹(약 1만원)을 낸다. 저녁 몇 끼만 팔면 한 달 월급만큼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요즘 너도나도 '까사'를 증축하느라 난리가 아니다. 택시기사도 고소득 인기 직업 중 하나. 외국인 손님을 서너 번만 태우면 월급쟁이보다 훨씬 더 큰돈을 쉬 벌 수 있다. 자연히 '꾹'을 만지는 계급과 '모네다'를 쓰는 계급 사이에 엄청난 불화가 자라나고 있다.

쿠바 어딜 가든 공원에서는 동상을 많이 본다. 혁명의 승리자인 체나 피델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주인공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호세 마르띠(Jose Marti)라는 시인이다. 그는 1800년대 후반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을 때의 영웅이라고 한다. 그는 당시 쿠바인에게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란 땅 위에 있는 것이지만, 이성에 대한 신중한 단련, 우주 조화에 대한 깨달음, 관대함에 대한 부단한 실천을 통해서 얻습니다." 이 시점에서 쿠바인이 다시 새겨야 할, 그리고 행복지수 62위인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말이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