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15년 6월 연방대법원 판결 5대4로 동성결혼 국가가 됐다. 103쪽에 이르는 합법 판결의 다수 의견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했다. 가톨릭에서 동성애는 허용하지 않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헌법이 가치와 법적 질서 사이에서 불일치가 나타날 때 자유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으며 동성혼은 이들이 중대한 헌신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썼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판결을 철저하게 구분한 것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신인 테미스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건 심판을 함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칭은 공정성을 의미한다. 신들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는 테미스의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회 질서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법과 정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정성에 의해서 구현된다. 판사가 법정에서 입는 법복이 검은색인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쉽게 침범 당하지 않으며 오염되지도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법복은 '공정함'과 '권위' 그리고 '책임'의 엄격함을 상징한다.
2012년 합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가 7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의 낙태 처벌 조항의 위헌성 여부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낙태 행위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청구인 쪽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지만, 법무부는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로 낙태의 증가를 막기 위해 낙태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일반인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주장과 낙태죄 폐지가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재판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구성된 6기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분석하며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판결과 개인적 성향은 구분되어야 한다. 2012년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고 낙태 시술 증가를 우려해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이번엔 어떤 판결을 내릴지 국민의 관심은 온통 11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을 향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