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은 양 씨 성을 가진 대한민국 영화배우들이 곤욕을 치른 날이었다. 한 뉴스 전문 채널에서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보도는 한술 더 떠 "경찰 조사 결과 양 씨는 간이 마약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에 강남경찰서는 양 씨의 마약 정밀 검사를 의뢰하고 마약 구매 통로와 동반 투약자 등을 조사 중"이라며 "최근 유명 영화와 지상파 인기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라고 추가 보도했다.
이러자 인터넷 포털 실시간검색에는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한동안 상위에 올랐다. '익명보도 원칙'에 따라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씨 배우'라고만 알려지자 많은 네티즌이 해당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양 씨 배우'를 찾기 위해 양 씨 성을 가진 배우들의 실명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 씨 성을 가진 배우 4~5명의 이름이 순식간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다. 양 씨 배우들은 소속사를 통해 의혹을 반박하는 등 일대 혼잡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양 씨 배우는 단역 배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보도 원칙'은 범죄 사실을 보도할 때, 특정인이나 특정 직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호칭 사용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다.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한글,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여 김 모 씨, K 씨 등으로 표기해야 하나 이니셜로 주변 정황에 의해 누구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때는 실명과 전혀 관계없는 A씨, B씨 등으로 사용하고, 그 이니셜이 실명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야 한다. 가령 실명이 '이몽룡'일 경우 엉뚱한 이름인 '변학도'라 하고 '가명'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최근 마약 관련 기사의 홍수 속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마약 관련 기사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그럼에도 최근 부쩍 '팩트 체크'없는 무책임한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번 '영화배우 양 모 씨'도 그런 경우다. 이번 사태는 인터넷 언론사들의 무분별한 낚시성 기사와 익명으로 처리된 기사의 낮은 신뢰도가 원인이다. 오보나 과장, 미확인, 일방보도 등 소위 '작문'기사의 폐해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