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 모두 할리우드 영화에 푹 빠져 있지만, 한때는 '프랑스 영화'로 몸살을 앓았다. 지금은 극장 문을 나서면 내용을 금세 잊지만, 프랑스 영화에 응축된 깊은 예술성에 영화를 보고 난 후 감흥은 꽤 오래갔다. 여기에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도 프랑스 영화였다.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누벨 바그'라는 영화운동이 나올 만큼 프랑스 영화는 예술 영화의 상징이었다. 르네 클레망은 예술로서의 프랑스영화를 완성 시킨,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흠모하는 감독이다. '태양은 가득히' '금지된 장난' '목로주점'에서 그는 독자적인 영화 사실주의를 개척했다.
1966년 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클레망은 실사화면을 중간중간에 넣어 영화의 사실주의를 극대화 시키려고 했다.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알랭 드롱, 장 폴 벨몽드, 샤를르 부아이에, 커크 더글러스, 글렌 포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단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기꺼이 영화에 동참했다. 영화는 파리에서 철수하는 나치스 군에게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예술을 사랑한 점령군 사령관이 히틀러 명령에 복종할 것인지, 예술의 도시 파리를 지켜야 할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고뇌를 다뤘다. 항복한 사령관이 놓친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히틀러의 절규는 이 영화의 백미다.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휩싸인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영화의 엔딩신 때문이다. 연합군의 파리 입성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소리였다. 클레망도 이를 꽤 비중 있게 다뤘다. 종 치는 장면과 파리로 들어오는 연합군, 개선문을 향하는 드골 장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교차 편집해 노트르담의 종소리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처럼 노트르담 대 성당은 프랑스인의 꿈이자 희망이며 자긍심이었다.
프랑스의 '심장'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로 프랑스인이 받을 정신적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아플 것이다. 우리도 2008년 화재로 국보 1호 숭례문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때, 훼손된 민족의 정서적 연대감이란 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 처절하게 경험했다. 깊은 상실감으로 좌절하고 있을 프랑스 인들에게 "힘내라"고 위로의 말을 보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