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김훈 작가가 얼마 전 산문집('연필로 쓰기')을 내면서 '알림'이란 제목으로 서두에 쓴 글이다. 역시 글쓰기의 대가 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 더 나아가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만이 갖출 수 있는 자신감이 단어 하나 하나에 흠뻑 배어있는 듯하다. '알림'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선언문' 같은 중량감이 느껴지는 것은 연필 끝에 가해지는 내공의 무게 때문이리라.
외람되지만 이 글을 한 번 뒤집어 본다. '나는 여론을 일으키고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의 글은 무엇인가를 도모하며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린다'. 뒤집고 보니 좀 섬뜩하다. 일부 정치인들의 글쓰기(또는 인용하기) 행태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치인의 글쓰기와 관련해, 일종의 강령을 압축해 놓은듯한 느낌도 든다.
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SNS에 쓰거나 인용한 세월호 망언에도 '편을 끌어모으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던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월호 유가족을 겨냥해 "징하게 해 처먹는다"거나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식의 자극적인 표현(문장)을 불특정다수가 보는 SNS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정치인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길거리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음식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이 나오기만 해도, 아이와 함께 걷던 길에 접어들기만 해도 아이 얼굴부터 떠오르는 걸 어떡합니까." 예전에 접했던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의 호소다. 세월호 유가족의 5년 세월도 이랬을 터인데 일부 정치인들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이 와중에 망언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국회의원이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 시상식에서 품격언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품격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김훈 작가의 글에 변형을 가했을 때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동시에 원래 문장의 품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품격은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내친김에 '바른정치언어상'도 한번 뒤집어 보자. '망언정치언어상'으로.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