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넘기고 'LCD' 고수
합작 'LG필립스LCD' 출범
세계 첫 HDTV 52인치 개발
2008년 사명변경 법인 독립
LG전자 '37.9%' 지분 소유

빅딜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만 가중시킨 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박정희 정부 시절에도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작업은 실패로 마무리된 바 있다.
LG가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긴 데 대해 당시 항간에는 현대의 대북사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정부의 강권에 마지못해 승복했던 구본무 회장은 이후부터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2011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거의 10여 년 동안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LG는 반도체를 현대에 넘기는 대신 현대전자의 반도체 이외의 전자부문 인수와 함께 나머지는 현금으로 받아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겼을 뿐 아니라 덤으로 데이콤(LG유플러스)까지 인수했다.
>> 결국 실패로 끝난 '빅딜'
한편 1998년 구 회장은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 논의로 반도체사업의 유지가 불확실해지자 그동안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추진해오던 'TFT-LCD(초박막 액정표시 장치)' 사업을 따로 분리해 별도의 'LG LCD'를 설립했다.
당시 정부와 현대전자는 LG반도체에서 LCD사업을 분리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구 회장이 "이번 빅딜은 반도체 사업의 빅딜이지 LCD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해 뜻을 관철시켰다.
덕분에 반도체는 현대로 넘겼지만 LCD는 지켰고, 분리 직후인 1999년 5월 LG는 필립스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16억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3개월 후엔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LG디스플레이의 모태는 1985년 2월 세워진 금성소프트웨어이다.
1987년 1월 금성사(현 LG전자) 중앙연구소에서 TFT-LCD 개발에 착수해 1993년 9월 LG전자 내 LCD사업부를 설립하고 1995년 9월 구미 LCD 1공장, 1997년 12월 구미 LCD 2공장을 준공했다.
1998년 12월에 연간 매출 5억달러를 넘어섰다. 1999년 6월에는 LG전자에 소프트웨어 관련 사업을 양도하고 같은 해 8월 LG필립스LCD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2000년 7월 구미 LCD 3공장, 2002년 3월 구미 LCD 4공장을 각각 준공했다.
2002년 12월에는 세계 최초로 HDTV용 52인치 TFT-LCD를 개발했다. HDTV는 기존의 TV보다 5~6배 이상의 해상도를 갖고 있어 고화질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TV 시스템이다. 2003년 5월 중국 난징에 제1모듈공장, 2004년 제2모듈공장을 준공했다.
>> 구미·파주에 공장 준공
2004년 7월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한국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으며 같은 해 8월 구미 LCD 6공장을, 2006년 1월 파주 LCD 7공장을 각각 준공했다.
2007년 3월 폴란드 모듈 공장, 2008년 4월 중국 광저우공장을 준공했다. 2006년 3월 세계 최초로 HDTV용 100인치 TFT-LCD를 개발했으며 업계 최초로 차세대 휴대폰용 TFT-LCD를 개발했다.
그러나 2008년 2월 LG필립스LCD의 기술제공사인 네덜란드 필립스가 지분매각에 나서자 같은 해 3월 LG디스플레이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8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로 독립한 이후엔 LCD 패널 등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으로 거듭났고 연간 약 25조원의 LG디스플레이는 2013년 현재 경북 구미(6개) 및 파주(2개)에서 총 9개의 LCD 패널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중국의 난징 및 광저우,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모듈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4세대, 5세대 패널 공장과 세계 최대 6세대, 7세대 패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2013년 9월 말 기준 LG전자가 37.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