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국토·자원 부족 한국과 유사
농식품업 중심 연구·인재양성 주력
농민 스스로 '밸류체인' 혁신 나서
정부·대학과 꾸준한 협력은 필수

우리나라는 작년에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었다. GDP 2만달러에서 3만달러에 도달하는 데 12년이 걸렸다. 세계 평균 기간은 8년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농업이 전체 경제성장을 못 따라가고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조 강국인 선진국들이 동시에 농업 강국인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4만 달러 선진국 대열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상당히 좁은 국토면적을 가지고 있고, 주변에 강대국 및 큰 시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리적으로 물류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원도 부족하여 인적 자원과 무역에 의지하는 구조이며, 과학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농업은 천양지차이다. 농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로 비슷한데, 우리나라가 농업의 고용 비중이 3배 정도 많으니 생산성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수출 비중은 17배 정도 적어 국제 경쟁력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는 1인당 GDP가 5만5천 달러에 달하고 농민이 더 잘 사는데, 우리나라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우리나라는 농지에 기반한 농업을 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농산물에 기반한 농식품업을 하고 있는 것이 커다란 차이라고 본다. 1880년대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막대한 곡물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와 곡물 가격의 하락으로 농업이 위기에 처하자 유럽 각국은 보호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자유무역을 유지하였다. 값싼 곡물 사료를 수입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키고, 우유를 치즈로 만드는 등 고부가가치 농식품으로 가공하여 주변국에 수출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소농, 가족농에 기반하였지만 네덜란드의 일관된 이러한 정책은 농업의 구조조정과 규모화,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켜 농가당 경지면적이 우리나라보다 19배 큰 기업농으로 성장하는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입개방 때마다 쌀직불제, 밭직불제 등 소득 지원정책이 오히려 농업의 규모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농업을 지식산업으로 전환시켰다. 1997년 국제 농업지식의 중심이 된다는 목표로 바헤닝언 대학과 정부의 농업연구청을 합병시켰다. 이후 바헤닝언 대학은 R&D 인력이 1만5천명에 달하는 푸드밸리를 조성하여 연간 매출이 66조원으로 네덜란드 GDP의 10%를 차지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중심에는 연구와 인재 양성, 창업을 담당하는 대학이 없다.
세 번째는 정부와 대학, 농민의 협력이다. 항상 위기라고 느끼는 농민들은 지식공동체인 '지식 서클을 만들어 학자, 공무원, 기업체 등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필요한 분야에 대해 배우고 토의하며 농업의 밸류체인을 혁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 혁신과 R&D는 정부 주도이고, 지자체-기업-대학(연구)의 협력 플랫폼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농업은 지식산업이며, 여러 이해 관계자가 꾸준히 협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리고 농업이 지식산업이 되기 전까지는 선진 강국으로 도약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