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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지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동물'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국민적 개탄이 자자하다. 선거법,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발의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중심 여야 4당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사당 폭력대치로 국회가 과거 '동물국회' 시절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복원된 '동물국회'의 양상이 과거에 비해 심각한 이유는 '말' 때문이다. 양측의 말 폭탄이 몸싸움보다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9일 하루에만도 거두어들이기 힘든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을 '국회를 못 맡길 도둑놈'이라며 청산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저지투쟁을 '반개혁 정당의 난동'이라고 쏘아붙였다. 한국당의 독설도 만만치 않다. 황교안 대표는 패스트트랙 발의를 "의회 쿠데타"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홍위병을 선사하는 공수처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과거에도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격돌하고,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정국이 경색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협상을 위한 퇴로는 열어놓았다. 협상 주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은 자제했던 것이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여당의 주인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와 7번이나 만났다.

동물국회 시절에도 언어의 금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야 정치는 동물적 행태보다 패륜적 언행이 더 문제다. '난동을 부리는 도둑놈(자유한국당)'과 '정권의 홍위병을 세우는 의회 쿠데타 세력(더불어민주당)'이 타협을 위한 대화를 모색하기는 힘들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에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사안을 해결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발의를 결정하기 전에 대통령의 제안을 실행했으면 '동물국회'는 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말 폭탄과 맞고발 대결로 대화 자체가 당분간 힘들게 됐다.

분명한 건 여야의 '정치인격'으로는 패스트트랙으로 실현하려는 다당제 국회가 상대의 절멸을 원하는 정치동물들의 난장판으로 변할게 틀림없다는 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