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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탁구를 시작하면 5부, 40대는 4부, 30대는 3부까지 갈 수 있다'.

탁구 동호인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 되는 말이다. 바둑에 급수가 있듯이 탁구에도 '부'라는 실력 분류 시스템이 있다. 보통 1~6부로 나뉘는데 6부가 가장 최하위 레벨(부)이다. 최상위인 1~2부에는 대부분 선수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3~4부 정도의 실력이면 동네에서 고수로 통한다. 이들이 간혹 동네 탁구장에서 플레이를 하면 모두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중국무술영화에서 무림고수가 객잔(客棧)에 홀연히 나타나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50대에 시작하면 5부까지밖에 갈 수 없다'는 말은 늦게 입문할수록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지만, 탁구에서 상위 레벨로 올라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동호회 교류전에서 각각 다른 레벨의 선수들이 맞붙을 경우에는 하위 레벨 선수에게 1~2점을 접어주는 식으로 시합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렇게 핸디캡을 적용한다 해도 하위 선수가 상위 선수를 이기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골프에서 하수가 고수에게 핸디를 듬뿍 받았다고 해서 고수의 돈을 따는 일이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프로세계에서 대표적인 서열 구분법은 세계랭킹이다. 성적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정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부 구분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고 디테일하다. 프로에서도 하위 랭킹의 선수가 톱클래스의 선수를 이기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그 기적 같은 일을 대한민국의 스무살짜리 탁구선수가 해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 안재현은 세계 14위의 윙춘팅을 시작으로 다니엘 하베손(29위), 하리모토 도모카즈(4위)를 차례로 꺾더니 대표팀 선배인 장우진(10위)까지 이기고 동메달을 따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추어 3~4부 선수가 1부 선수를 핸디 없이 이긴 것에 버금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대 이변의 주인공 안재현이 이틀 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부다페스트로 떠나기 전 그의 세계랭킹은 157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84계단 높은 73위 선수로 '신분'이 바뀌어 있었다.

세계랭킹 1~3위를 독식하며 세계 탁구를 지배하는 중국과 중국을 쫓는 일본, 그리고 유럽의 저력에 밀려 고전하는 게 한국 탁구의 현주소다. 모처럼 한국탁구의 부활을 예고하는 희망의 랠리를 보았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