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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 소설인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의 배경은 '순천만(順天灣)'이다. '무진'은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어느 정도 책을 읽었다면 그곳이 작가의 고향 '순천'이란 걸 금방 눈치챈다.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김승옥은 소설에서 무진(순천만)의 안개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느 새벽, 안개가 순천만의 갈대와 부딪히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순천만을 다시 찾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순천만은 그런 곳이다.

김승옥의 또 다른 아름다운 소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중 '갈대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온 들에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들이 아스라하니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장식처럼 붙어 보였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처음 순천만을 방문했을 때 눈 앞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새, 갈대, 바다가 모두 장식인 그런 순천만이 부러웠다. 어디서 오는지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고, 여기저기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이런 순천만이 갯벌의 보고인 우리 서해안 어디에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천만은 떼어다가 우리 옆에 놓아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소원대로 수도권에도 순천만이 생길 모양이다. 인천 소래포구 갯벌을 시흥 갯골생태공원과 연계시켜 '수도권의 순천만'으로 조성한다고 인천시가 발표했다. 인천대공원에서 시작해 장수·운연천~소래습지생태공원(350만㎡ )~소래포구~시흥갯골생태공원(150만㎡ )~시흥 물왕저수지를 잇는 약 20㎞ 구간을 아우르는 수도권 최대 습지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이곳에는 순천만보다 더 아름다운 노을도 있다.

'수도권 순천만'의 성공은 지자체 간의 굳건하고 유기적인 관계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지에 조심스럽게 생명을 불어넣어 모든 게 다시 살아 꿈틀거릴 때까지, 무엇보다 우리의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의 순천만이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두른다고 우리 앞에 '순천만' 하나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성과를 내기 위한 조바심은 절대 금물이다. 인내심을 갖고 길게 멀리 보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