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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영희(張英姬).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영문학자 장왕록(張旺祿)의 딸. 우리에게는 수필가로 더 기억되고 있다. 생후 1년에 찾아온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수술을 받고도 긍정의 사고를 보석 같은 글로 풀어 놓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준 '희망전도사'. 생전 자신이 '암 환자 장영희'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그는 "내 삶은 '천형(天刑)'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하곤 했다. 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추암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강단에 서며 "신은 재기(再起)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을 넘어뜨린다"고 말해 감동을 줬던 그다.

장 교수하면 떠오르는 건 월간지 '샘터'다. 장 교수는 2000년부터 '새벽 창가에서'란 제목으로 57편의 글을 연재하며, 최인호의 '가족'과 함께 샘터의 지가를 올렸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올해는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달 말 공교롭게도 장 교수의 대표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100쇄를 돌파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한 책으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살을 에는 암 투병 중에도 그림 작가 선정에서부터 제목, 책의 디자인까지 모두 장 교수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1쇄는 10년 전 오늘, 2009년 5월 8일 장 교수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발간됐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9일 그는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가정폭력과 가정불화로 인한 대화의 단절이 '가정의 틀'을 뒤흔든다. 가족이 해체되고, 가정이 붕괴하고 있다. 지난 5일 어린이날엔 생활고를 겪던 일가족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단어들도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장 교수의 글이 떠오르는 5월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