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가장 학구적인(?) 그림은 '아테네 학당'이 아닐까 싶다. 라파엘로가 1510년 완성한 이 벽화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철인, 학자들이 학문과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손으로 지상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에서는 서로 이데아와 현실에 대해 설파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진중권은 저서 '미학 오디세이'에서 이들의 가상대화를 재치 있게 풀어내기도 했다.
아테네 학당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대학에는 '진리의 상아탑', '학문과 지성의 요람' 등 고상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아테네 학당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취업률 때문에 대학의 본질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중심의 학과 개편 속에서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 분야의 학과는 존폐의 기로에 서기 일쑤다. 오죽하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대학가 취업지상주의의 결정판은 '계약학과'다. 계약학과는 산학협력 촉진 차원에서 특정 기업과 대학이 계약을 맺고 관련 업무에 필요한 학과를 개설하는 학위 과정을 말한다. 졸업 후 취업이 100% 보장되며 학과 운영 비용은 기업이 일정 부분 부담한다. 최근에는 연세대가 삼성전자의 계약학과로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신설키로 하더니, 취업에서 자유로울듯한(?) 서울대마저 계약학과 운영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러던 차에 인천에도 계약학과가 신설될 전망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천시는 영종도 일대에 들어서고 있는 대규모 복합리조트에 2만여명 규모의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계약학과를 2020년까지 지역 대학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생각하면 일단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역 대학이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는 것은 대학이 고유의 색감을 잃어가기 때문이리라. 자꾸만 퇴색되는 그림을 매일 보는 느낌이랄까.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본다. 2019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대화를 할 듯싶다. "이번에 계약학과 취업률이 100%라면서? 어쩌다가 학당이 취업창구로 전락했는지, 쯧쯧…." 플라톤이 혀를 차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을 잇는다. "그게 현실입니다."
/임성훈 논설위원